합정 취향관, 영감이 머무르는 공간의 끝... 힙해도 저물고 마는 시간이 있다.
합정역엔 취향관이 있다. 아니 있었다. 취향관은 코로나 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당시 '...
합정 취향관, 영감이 머무르는 공간의 끝... 힙해도 저물고 마는 시간이 있다.
annotator ・ 2023. 2.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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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역엔 취향관이 있다. 아니 있었다.
취향관은 코로나 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곳이다. 당시 '취향'이라는 단어가 막 주목받기 시작할때 아주 현명하게 오프라인에 살롱문화를 결합한 공간을 선보였다.
취향관은 '당신'을 위한 취향의 공동체를 지향했다.
홈페이지에 글을 옮겨 보면
취향관은 건강한 공동체가 더 나은 나를 만든다고 믿습니다. 살롱을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취향관은 사유와 대화를 통해 자신만의 고유한 삶의 방식과 취향을 찾을 수 있는 문화 살롱이자 회원제 사교클럽입니다.
취향관이 정의하는 ‘취향(趣向)’은 좋아하는 것들을 넘어서 ‘나아가려고 하는 방향’, 즉 삶을 대하는 태도이자 방향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나’를 위한 시간이 고갈된 일상 속에서 성과와 타인의 시선에 쫒기듯 살아가느라 잊고 있던 ‘취향’을 함께 회복해 나가자고 제안합니다.
온전히 ‘당신’을 위한 취향의 공동체 안에서 함께 질문하고 발견하는 기쁨을 일상에 채워나갑니다.
취향관
소셜네트워크의 시대, 소셜의 정의는 무엇이고, 그걸 오프라인이란 공간에서 멤버십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만들어간다는 것. 낭만적이지만 가능할까 싶은 프로젝트였다. 누구나 아티스트나 크리에이터와 교류를 원하고, 아지트를 원하지만 그것이 현실화하긴 힘드니까.
2018년 4월 처음 문을 연 취향관은 올해 1월 말 문을 닫았다. 4년 10개월 정도 운영했다. 그리고 나는 취향관이 문을 닫는 그날 마지막으로 취향관을 찾았다. 취향관 홈커밍 파티였다.

합정역 인근의 마당 넓은 주택을 통째로 카페 겸 바, 모임 공간으로 만들어 언론에도 많이 소개됐었다. 개인적으로는 팀원 중 한명이 취향관 대표와 인연이 있어 흥미롭게 생각했던 곳이다. 가오픈 상태에서 팀원들이 워크샵을 이곳으로 다녀오기도 했었는데, 그 팀원 중 두명과 이날 소복히 눈이 쌓은 곳으로 왔다.
1980년 지어진 2층 양옥집을 개조했다는데, 40년이 넘은 집 치고 외관이 너무 잘 유지된 것 같았다. 마당에 있는 나무도 정겹고, 서울 시내에서 구옥을 고쳐서 산다면 이런 느낌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 (물론 현실은 이런 곳은 모두 까페가 되고 만다.)
나무로 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컨시어지가 보인다. 한참 운영될 때 사진을 봐서 그런지 몰라도, 지금은 코로나 등으로 한참 손이 닿지 않아 느낌이 조금은 삭막했지만 컨셉 자체는 매력적이다.


1층 거실의 경우 운영될 때는 만남과 교류가 이뤄지는 공간이었다고 한다. 우린 1층 카페&바 쪽에 자리잡았다. 웰컴드링크였던 하이볼을 한잔씩 들고. 과거 같이 한 팀에서 일하며 희노애락을 보낸 우리 셋은 지금은 모두 다른 회사에 다니고 있다. K선배만 예전 회사에 남아 지금은 다른 역할을 맡고 있었고, J 형은 몇번의 이직을 거쳐 스타트업에 있었다. 나 또한 10년 넘게 다는 회사를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이직했고.

카페&바 공간은 예전엔 주로 대화를 진행하는 살롱 모임이 이뤄지는 곳이라고 했다. 건너편엔 취향관의 과거 멤버였던 팀이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보다 평균 10년은 아래일 것 같은 분들이었지만, 나누는 대화는 평소에 잘 듣기 힘든 소재가 많더라. 이기적 유전자나 막시즘 이야기를 술집에서 듣는 건 대학 시절 이후 거의 처음이 아닐까...
몇 잔을 마시다, 공간 구경에 나섰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1층이 자유로운 응접과 우연한 만남을 추구하는 공간이라면, 2층은 좀 더 다양한 모임이 이뤄지는 공간이라고 들었다. 공간 디자인을 누가했는지 모르지만, 아주 고급스럽지는 않아도 적절하게 캐주얼하면서 고풍스러운 느낌을 잘 살린 편이 아닌가 싶었다. (물론 진짜 오래된 양옥집에서 나는 그런 맛이나 향기는 없다. 조금은 인위적인 클랙식이랄까)


2층에 올라서면 바로 보이는 라운지와 테라스 모습이다. 왼쪽은 취향관 홈페이지의 사진(낮)이고 오른쪽은 현재의 사진(밤)이다. 지붕쪽에 적당히 층고를 높여 개방감이 있고, 폴딩 도어를 통해 테라스로 나갈 수 있어 다소 좁은 편인 2층 라운지를 넓어 보이게 했다. 통창도 시원하다는 느낌.

이곳은 계단식으로 짜여진 목재 플로어가 있는 미디어룸이다. 작은 극장이라 생각하면 되는데, 영상과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는 장비도 잘 준비되어 있다. 멤버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는데, 예전에 가오픈 당시 팀 회의를 한 곳도 이곳이었다. 위쪽이 노출 콘크리트 + 벽돌로 되어 있어 분위기는 있는데, 미디어룸으로 활용하기엔 조금 아쉬운 느낌도 있었다.

벽돌과 나무가 묘하게 마감된 천장


그리고 아뜰리에라 부르는 공간이 두곳이 있었다. 질문과 대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방문하시는 분마다 자유롭게 누군가는 스튜디오로, 누군가는 화실로, 공방으로 사용하 던 곳이다. 이곳에서 작가로 등단한 분도 있고, 앨범이 나오기도 하고, 전시회나 다양한 프로젝트가 탄생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모임 공간으로는 규모나 분위기가 아늑해서 좋은 듯. 의자가 다양한게 맘에 들었는데... 의자도 책상도 일괄 처분하신다고 해서.. .잠깐 욕심이 나기도 했다.

여튼 다시 1층 바로 돌아와서 수제 맥주도 한잔하고, 근 6개월만에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취향관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눴고, 한때 강남에 취향관을 열어달라는 요청이 쇄도해 강남점이 생길 뻔 했다는 이야기도 듣고... 시간이 지나며, 지금은 우리 회사가 '취향'을 그렇게 찾는데.. .이런 곳을 인수해서 잘 만들고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여튼, 그날 2차는 다른 곳으로 옮겨서 했다. 취향관을 기억하는 많은 분들이 계속 취향관을 찾아 오고 계셔서다. 우리야 취향관 멤버십으로 꾸준히 나와 사람을 사귀고 한 적도 없고 해서... 이들에게 추억을 회고할 시간을 주는게 예의가 아닐까 싶어서다.
취향관은 이제 문을 닫았지만, 취향관의 아이디어와, 방식 그리고 발자취는 아마도 서울이란 도시에 어느정도 낭만의 불꽃은 피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런 공간에 콘텐츠까지 붙여서 시도하는게 쉽지 않겠지만, 시간이 흐르고 언젠간 나도 사람과 연결 그리고 콘텐츠가 채워진 공간을 만들고 기록하며 스토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듀 취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