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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로미나 : 담백한 그러나 묵직한  

2015. 10. 27. 18:10 )

[

감독

스티븐 프리어스

출연

주디 덴치, 스티브 쿠건, 시모네 라비브

개봉

2013 영국, 미국, 프랑스

평점

 1. 담백한 식재료 


실제 필로미나씨와 영화에서 역을 맡은 주디 덴치

<필로미나의 기적: 원제 필로미나>은 실화다. 2009년 전직 BBC 기자인 마틴 식스미스가 쓴 ‘잃어버린 아이(The Lost Child of Philomena Lee)’가 원작이다. 예전에도 쓴 적이 있지만 실화는 영화나 소설과는 또 다른 ‘아우라’를 갖는다. 그건 조미료를 듬뿍 쳐서 만든 별점 5개짜리 요리와는 달리 기본적인 손질만으로 최고의 식감을 만드는 식재료 같은 거다.
 
  개인적으론 ‘기적’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지만 때론 60억명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조합 속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필로미나의 이야기는 ‘기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다. 당시 아일랜드 1만명 입양아들의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말이다.
 
 

 

필로미나는 일주일에 한번 아들 마이클을 만났다.

 

 2. 기자


 영화에 나오는 마틴은 소위 ‘Sad story’를 취재하는 기자의 고민을 그대로 드러낸다. 물론 수십년 동안 기자를 하고 난 후 동행 취재하는 마틴과 짬밥 모자란 기자를 비교하긴 좀 그렇지만, 영화를 보며 마틴에 공감할 수 밖에 없었다.(수양이 필요하다)
 
  예전부터 가장 힘든 취재 중 하나는 장례식장 취재다. 대부분의 경우 취재의 대상이 사망한 상황이라는 점과, 주변인들이 그 죽음을 인정하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점은 장례식장에 발을 딛는 순간 스스로를 이물질 처럼 여기게 만든다. 고인에 대한 예의와, 유족의 감정을 고려하며 ‘인간’으로서 도리와 ‘기자’로서의 취재를 고민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예전 일산 이마트에서 냉동기 점검 작업을 하다 숨진 서울시립대 황승원씨 사건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사고 소식을 듣자 마자 현장에 들렸다 장례식장으로 갔었는데, 워낙 초년병이었던 시절이라 장례식장 취재가 쉽지 않았다. 부의는 해야 하는건지, 유족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 건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냥 조문객이 되기로 했고. 조문을 마치고 병원에 계속 앉아 있었다. 일진의 전화가 쉴새 없이 울렸지만, 무시했다.
 
 우연이였을까 승원씨 어머니가 휴식을 취하러 나왔다가 옆자리에 앉게 됐고, 여동생과 어머니를 인터뷰하게 됐다. 아니, 사실은 그냥 이야기를 하게됐다. 가난, 성실함. 가족. 수첩에 메모조차 못한 채 한참을 이야기를 들으며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한겨레에서 사건의 문제를 다룬 참 좋은 기사를 썼던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유족 취재요령도 생겼지만, 요령만으로는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곳이 장례식장이다. 

 
 영화에서도 초중반에 마틴은 함께 미국에 도착한 필로미나에게 아들의 죽음을 알려야 한다. 영화라면 나는 노트북을 덮고 죽음을 알리는 걸 미루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마틴은 아무말 없이 노트북을 돌려 그녀에게 아들의 죽음을 알렸다. 어쩔수 없지만 알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마틴은 출장까지 가서 판을 벌여 놓은 상황에서 영국으로 돌아가겠다는 필로미나를 붙잡지 않는다. 필로미나에게 필요한 건 위로고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취재압박에 쫒겨 상처를 헤집는 일따위는 하지 않는다. 현실을 담담하게 전하는 것, 그리고 기자라는 이름으로 상처를 드러내길 강요하지 않는 것. 마틴이 ‘나쁘지 않은’ 기자라는 생각을 했었다.
 

 3. 문전박대 

 다른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필로미나가 아들 ‘마이클’의 파트너였던 ‘ ’를 만나러 가는 장면이다. 마틴은 베테랑 답게 취재를 거부하는 ‘취재원’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고 자신한다.(물론 쫒겨 난다. 당연하지!) 현장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모두다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때로는 집앞에서 밤을 새기도 하고 애원에 협박(?)까지 하기도 한다. 여튼 마틴이 열 수 없었던 문을 필로미나는 연다. 그녀는 아들의 어머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서 부터는 예상할 수 있는 전개다. 사실은 마이클이 모국인 아일랜드를 늘 생각하고 있었고, 어머니를 찾기 위해 아일랜드의 수녀원까지 찾아왔었다는 이야기. 티비안에서 거친 비디오테이프가 흘러가는 모습은 뻔하지만 진실된 이야기가 전하는 감동을 보여준다.

 
 4. 게이(Gay) 그리고 공화당



**** 필로미나의 아들 마이클 헤스의 실제 모습

 실화였던 영화가 소위 ‘이야기’로 바뀌는 장면은 필로미나의 아들 마이클이 조지 부시 대통령의 법무 보좌관이고 레이건 행정부에서도 일했다는 부분이다. 당연하지만 기사를 발주한 BBC 편집장은 주말용으로 ‘딱’이라고 말한다. 스토리가 된다는 거다. 심지어 마이클은 ‘게이’다. 맙소사 공화당에서 일하는 게이 보좌관이라니.

  

레이건 행정부에서 일했던 마이클 헤스

  이것이 이야기라면 극적인 ‘장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현실이기에 ‘맙소사’가 된다. 미국에서도 최근에야 LGBT에 대한 개방적인 분위기가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데, 80년대에 그것도 공화당이라면야.... 가짜 여자친구를 만들어 두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게 당연하다.

 흥미로운 건 필로미나는 아들이 ‘게이’였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전혀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릴적 부터 예민했으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그녀의 말은, 태어나면서부터 만들어진 모자간의 유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아들이 HIV로 죽었냐고 담담하게 묻는 모습을 보며, 아들이 어떤 선택을 했건 포용하고 이해하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막연하게나마 느꼈다.

 5.  종교 

아일랜드 강제수용시설에 갇힌 극중 필로미나

  때로 ‘신념’은 ‘아집’이 되고, 주위를 못보는 경주마로 만든다. 신의 섭리라는 화려한 가면은 그 안에 추한 얼굴을 가려주지만, 가면에 뚫린 구멍으로 밖에 세상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무신론자인 나로선 로스크레아 수녀들의 논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영화의 과장일지 모르지만 수녀원으로 대표되는 ‘시스템’은 정의라는 권위 하에 인간을 종속시킨다. ‘니가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논리다. (망할 ‘자비’와 ‘은총’은 어디다 내다버린건가)
 
 영화에서 필로미나는 “내가 키웠다면 이렇게 훌륭하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들이 입양된 덕분에 고생하지 않고 잘 자랐다는 의미다. 수녀원의 고압적인 거짓말과 필로미나의 모습을 보며 한국이 많이 떠올랐다. 한국도 한국전쟁이후 어려웠던 시기 많은 아이들을 입양보냈다. 그 과정에서 영화에서 처럼 돈도 오갔을 것이고 시설의 학대도 많았다.
 
 당연히 부모의 마음 한켠엔 어려운 환경에서 자식을 고생시키느니 더 나은 집에서 호의호식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수녀들을 용서하되, 기사를 보도해 달라고 요청한 필로미나의 선택은 현명했다. 수녀들과 달리 ‘용서’라는 섭리를 따르면서도, 부당함을 알리고 관심을 촉구해 변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필로미나는 로맨스 소설을 즐겨 읽고 첫 해외여행에 신기해하는 평범한 할머니다. 하지만 필로미나의 이야기가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 이야기가 반향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1995년까지 이혼조차 불법일 정도로 엄격한 카톨릭이 지배하던 나라다. 영화에 등장한 강제노역시설(입양시설)도 1996년에야 문을 닫았다. 그런 아일랜드는 올해 5월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할 정도로 변화했다.
 
  엔다 케니 아일랜드 전 총리도 2013년 불법 입양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지금도 ‘필로미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미혼모의 아이를 찾아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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