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 위기는 전염된다: 티메프 사태 4주 대응 기록
티몬·위메프 사태가 터진 날, 우리에게 가장 먼저 온 질문은 "우리는 안전한가"가 아니었다. 직접 관계없는 위기에 RCPS(상환전환우선주) 회계 착시까지 번진 4주간의 대응 기록.
2024년 7월, 티몬·위메프가 정산을 멈췄다.
처음엔 단순 유동성 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며칠 만에 판이 바뀌었다. 수백억 원의 미지급 사태가 터지면서 셀러들이 환불 불능 상태에 빠졌고, 소비자들은 환불을 받지 못한 채 오프라인 매장 앞에 줄을 섰다. "e커머스 플랫폼을 믿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사회 전체로 번졌다.
오늘의집도 e커머스 플랫폼이다. 인테리어 제품을 파는 곳이지만, 소비자 눈에는 같은 카테고리다.
위기는 직접 관계없어도 번진다
PR에서 가장 위험한 위기는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불안감이 전파되는" 상황이다. 오늘의집은 티몬·위메프와 전혀 다른 구조였다. 직접 판매 비중이 높고, 정산 시스템도 달랐다. 특히 문제는 RCPS(상환전환우선주)로 인한 회계상 착시 부분이었다. 상장을 위해 K-IFRS로 전환하며 예전에는 잡히지 않던 부채가 크게 잡혔고,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하지만 팩트는 명확했다.
하지만 팩트로만 싸우면 지는 경우가 있다. 불안감은 팩트보다 빠르게 퍼진다. 기자의 인식, 정치권의 움직임, 셀러의 불안, 소비자 커뮤니티의 분위기 — 이 네 가지가 각각 다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4개 시나리오 설계
사태 발생 직후 커뮤니케이션팀에서 곧바로 상황을 분석했다.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위기를 4개 축으로 나눴다.
첫 번째는 언론이다. 기자들은 이미 e커머스 플랫폼 전체를 타깃으로 보도를 확장할 가능성이 있었다. "오늘의집은 괜찮은가"라는 문의가 오기 전에 먼저 메시지를 만들어야 했다.
두 번째는 정치권이다. 국정감사 시즌이 다가오고 있었다. e커머스 규제 강화 움직임이 이 사태를 계기로 가속될 수 있었다. 정책 방향을 주시하며 필요한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했다.
세 번째는 셀러다. 오늘의집에 입점한 파트너 업체들도 분명 불안해할 것이었다. 정산 구조와 안전성에 대한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말이 없으면 불안이 커진다.
네 번째는 소비자 커뮤니티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오늘의집도 위험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진다. 초기 진압이 중요했다.
TF를 구성하고, 각본을 써두다
리스크 TF를 꾸렸다. 법무, CS, 커뮤니케이션 세 파트가 함께 들어갔다. 각자의 역할이 달랐다.
법무는 티몬·위메프 사태와 오늘의집의 구조적 차이를 정확히 정리했다. 정산 방식, 에스크로 구조, 유동성 리스크 여부. RCPS로 인한 착시와 우리 회사의 재무상 건전성. 이것이 우리가 기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팩트의 베이스였다.
CS는 소비자 문의 패턴을 실시간으로 추적했다. "티메프처럼 되는 거 아니냐"는 문의가 실제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에 대한 표준 응답 매뉴얼을 빠르게 만들었다.
커뮤니케이션팀은 시나리오별 메시지를 설계했다. 언론이 물어올 때의 답변, 셀러에게 나갈 공지, 소비자 채널에서 쓸 메시지. 각각 다른 톤과 강도가 필요했다.
"오늘의집은 안전하다"가 뉴스가 되려면
단순히 "우리는 괜찮다"고 말하면 공허하다. 그게 뉴스가 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하고, 전달 타이밍이 맞아야 했다.
선택한 방식은 사전 브리핑이었다. 주요 경제·IT 기자들에게 먼저 연락해 구조를 설명했다. 기사화를 요청한 게 아니라, "혹시 문의가 있을 때 정확히 쓸 수 있도록" 배경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기자 출신이라 이 방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기자는 기사가 터진 뒤 허겁지겁 입장을 묻는 회사보다, 미리 맥락을 준비해두는 회사를 신뢰한다.
준비를 해도, 결국 터질 건 터진다. 주요 언론사에서 회사의 재무건전성을 짚는 기사가 나왔다.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K-IFRS로 바꾸며 부채가 급증한 탓이다.
설명을 하고, 해명을 했지만 한번 붙은 불을 꺼지지 않았다. 보도해명자료를 만들고, 주요 언론사를 돌며 사실관계를 설명했다.
재무전문가가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고, 투자자들은 모두 아는데도 한번 나간 기사를 되돌리긴 어려웠다.
다양한 설명기사, 해명 기사가 나오고 회사가 재무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셀러들의 동요가 이어졌다.
일반기업회계 기준으로 살펴보고, CFO가 언론 인터뷰를 하고, 보험까지 마련하고 나서야 어느정도 사태가 진정됐다.
약 4주가 걸렸다. 일부 언론의 프레임이 회사를 흔드는 건 한 순간이었다.
기자 출신 PR이 다른 한 가지
이 경험에서 가장 크게 느낀 것은 "판세를 읽는 것"의 중요성이다.
기자 시절에는 이슈가 어떻게 번지는지, 기자들이 어떤 각도에서 기사를 쓰는지, 정치권이 언제 어떤 이슈에 올라타는지를 몸으로 배웠다. PR 담당자로 일하면서 그 경험이 가장 직접적으로 쓰인 순간이 티메프 사태였다.
위기관리는 결국 정보의 싸움이다.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남들보다 빨리 보고, 먼저 움직이는 것. 위기가 번지는 경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 그리고 팩트를 적시에 올바른 채널로 전달하는 것.
물론 그럼에도 예기치 못한 기사가 나오고, 그에 대한 수습을 정신 없이 해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불이나면 소방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 PR의 숙명.
티메프 사태로 큰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