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 이후 또 하나의 중국발 AI 충격으로 기록된 Kimi 3. 기사를 읽으며 어째서 중국에서 이렇게 뛰어난 AI가 계속해서 나올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창업자 스토리를 읽다 보니 Kimi를 만든 창업자는 대학 시절 록밴드 드러머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최근에 재미있게 본 김부장 박진철의 락 스피릿도 생각나고, 흥미롭다는 생각 정도가 들었다. 창업자에게 밴드 경력 하나쯤 있을 수도 있지라는 생각.

그런데 양즈린(杨植麟)이라는 인물을 조금 더 파고들어 보니 꽤 재미있는 포인트가 보였다. 1992년생인 양즈린은 좋아하는 밴드 핑크 플로이드, 인생 앨범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 문샷(Moonshot)을 세웠다. 창업 시점은 앨범 발매 50주년에 맞췄다. 아니, 이렇게 회사 이름을 정한다고? 예전에 일했던 회사 오늘의집의 법인명은 '버킷플레이스'다. 대표가 자기의 버킷리스트 같은 회사를 만들어 보고 싶어서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결이 좀 통한다고 할까? 흥미가 동했다. 챗봇 이름 Kimi는 어디서 나왔을까? 양즈린의 영어 별명이었다. 양즈린은 아직 30대 초반이지만 철학이 있었다. "진짜 위대한 기업에는 문화적 깊이가 필요하다. 기술만으로는 영혼이 없다"

테슬라를 만들고 화성으로 이주하겠다던 일론 머스크가 떠오르는 스토리. 양즈린이 궁금해졌고, 혹시 다른 중국의 AI 회사들은 어떤 창업자와 어떤 배경이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자료를 찾아보니 공통적인 부분들이 꽤 보였다. 딥시크의 량원펑, 미니맥스의 옌쥔제, StepFun의 장다신, 즈푸의 장펑, 바이촨의 왕샤오촨. 지금 중국 AI를 끌고 가는 이 여섯 사람이 그냥 탄생한 게 아니었다.

지방 소년들, 개혁개방 키드

먼저 눈에 띈 건 출신지였다. 이들은 중국 전통의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명문가 자제들이 아니다. 양즈린은 광둥성 산터우, 량원펑은 같은 광둥성 잔장, 옌쥔제는 허난성의 작은 현, 왕샤오촨은 쓰촨성 청두가 고향이다. 대부분 내륙이거나 남부의 지방 도시다. 한국으로 치면 광역시 급도 아닌 지방 중소 도시가 대부분 고향인 셈이다.

이들의 나이는 이제 30대 초반에서 40대 초반. 가장 나이가 많은 량원펑이 1985년, 옌쥔제가 1989년, 양즈린이 1992년생이다. 이들은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문을 연 시기에 유년시절과 10대를 보낸 첫 세대다. 분명 가난했지만 매년 눈에 띄게 중국이 성장하고 부유해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체감해 왔다. 마치 한국이 1980년대 고도성장기 자고 일어나면 건물이 들어서고 월급이 오르던 시기를 이들은 어린 시절에 겪었다. 개혁개방 키즈들은 공부가, 창업이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었던 거다.

지방에서 자란 소년들이 베이징으로, 칭화대로 가서 유학을 떠나고 다시 귀국하여 성공하는 스토리. 그 길 자체가 이들에겐 하나의 커다란 중국식 영웅 서사라 볼 수 있다.

수학이 탈출구였던 아이들

두 번째 공통점은 수학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어린 시절 수학이나 프로그래밍에 미쳐 있었고, 대부분 독학으로 그 세계에 들어갔다.

옌쥔제는 학교 진도가 너무 느려서 미적분을 혼자 뗐다. 왕샤오촨은 일곱 살에 소프트웨어를 만들기 시작했고, 1996년 국제정보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땄다. 양즈린은 프로그래밍을 한 번도 안 해본 상태에서 중학생 1년 공부만으로 광둥성 정보올림피아드 1등을 했다. 이후 칭화대 자율전형에 붙고, 가오카오에서도 산터우 이과 전체 수석을 차지했다. 그냥 천재들의 스토리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라고 해서 입시 만점 받은 천재가 없었던 건 아니고, 전 세계 수학올림피아드에서 첫손 꼽히는 인재가 우리나라 학생들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들의 이야기는 더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읽은 스토리 중 미니맥스의 옌쥔제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데 "톱 수학자는 될 수 없다는 걸 일찍 깨닫고, 대신 AI에 흥미를 발견했다"고 했다. 이 대목에서 이들이 락을 좋아하고, 수학을 좋아하던 것이 이해가 갔다. 좋아하는 것을 향한 깊이. 그리고 기술을 넘어선 목표. 과연 우리나라에는 수학이나 과학을 정말 좋아하다가 AI나 창업으로 가는 경우가 있을까?

미국이라는 경험

세 번째 공통점은 미국이다. 이들 중 대부분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인 미국을, 실리콘밸리 최전선을 직접 경험하고 느꼈다.

양즈린은 칭화대 졸업 후 카네기멜런대에서 박사를 했다. 지도교수는 지금 애플과 구글 딥마인드에 있는 석학들이었고, 박사 과정 중 구글 브레인과 메타에서 일했다. 튜링상 수상자인 요슈아 벤지오, 얀 르쿤과 함께 논문을 썼다. 트랜스포머 계보의 핵심 논문인 Transformer-XL과 XLNet의 제1저자가 바로 그다. 쉽게 말하면 앞선 문장들을 메모해 두고 다음 문장을 해석해 맥락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다.

장다신의 이력도 재미있다. 그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16년을 일했다. 검색엔진 빙, 음성비서 코타나를 만들었고,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원의 수석과학자이자 부사장까지 올랐다. 미국 빅테크 심장부에 깊이 들어가 시대를 만들어 온 사람이다. 그가 MS를 나온 이유는 하고 싶은 걸 못해서다. 2022년 말 챗GPT가 나오자 그는 자체 대형모델을 만들자는 10페이지짜리 제안서를 MS에 냈다고 한다.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직접 대형모델을 만들기 보다 오픈AI에 투자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는 "여기 남으면 AGI가 나와 무관하게 성장하는 걸 지켜만 봐야 한다"며 사표를 냈다. 멋지다.

"우리는 애초에 작은 회사를 만들 생각이 없었다. AGI를 향해 간다. 아니면 이 사람들이 왜 모였겠나"

통이 크다. 작은 성공 따위의 반복이 아니라, 판을 만들고자 하는 비전이 있었고,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다. 세계 최고의 무대를 겪고 경험한 이들이 새로 판을 만들고자 중국으로 돌아온 거다.

귀환 서사, 중국의 새끼 호랑이 키우기 전략

요약하면 지방의 이과 천재가 미국 최고 대학과 기업을 거쳐 다시 돌아와 창업하는 게 스토리의 핵심이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국에서 이런 스토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건 중국이 가진 구조적인 시스템이 있다는 가설을 세울 수밖에 없다.

첫째, 천재를 위한 지름길이다. 중국 입시도 한국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은 지옥이다. 가오카오는 한국 수능 보다도 훨씬 살벌하다. 그런데 중국에는 천재들을 위한 지름길이 있다. 수학·정보 올림피아드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가오카오를 건너뛰고 명문대에 직행한다. 양즈린과 왕샤오촨이 지름길 루트를 탔다. 최고의 이공계 명문대라는 칭화대에는 아예 '야오반(姚班)'이라는 특별반도 있다. 중국의 유일한 튜링상 수상자 야오치즈가 2004년 프린스턴을 떠나 베이징에 만든 컴퓨터과학 영재 트랙이다. 이 길을 밟은 천재가 매년 수만, 수십만명 이상이 탄생한다. 통계를 보니 중국에서 매년 STEM 전공 졸업생만 500만 명이 배출된다고 한다. 매년 50만명 정도가 배출되는 미국의 열 배이고, 15만명 정도를 배출하는 한국의 30배가 넘는다. 500만명 중에 고르고 고른 천재들이 AI와 수학에 몰입하는 거다.

둘째, 천재가 천재를 기른다. 즈푸의 창업자 장펑과 수석과학자 탕제는 칭화대 지식공학연구실(KEG) 출신이다. 그런데 이 탕제 교수가 양즈린을 포함한 젊은 AI 리더들을 직접 길러냈다. 하나의 연구실이 즈푸와 문샷을 동시에 낳은 셈이다. 미국에서도 한때 '페이팔 마피아' 같은 단어가 있었지만, 중국은 사제관계가 같이 창업을 하기도 하고 서로를 끌어주고 밀어 준다. 반드시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의 수많은 명문대 학맥이 곧 산업의 지도로 연결되는 모습이다.

셋째, 경쟁자를 키우는 1세대 창업자들이다. 아이디어가 좋고 인재가 좋더라도 자본이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게 AI 바닥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와 재원이 반드시 필요한 영역이라는 말이다. 이 지점에서 중국이 놀라운 건 1세대 창업자들이 끊임없이 투자를 하고 후진을 키워내는 부분이다. 알리바바는 자체 모델 큐원(Qwen)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문샷에 대규모로 투자한다. 알리바바와 텐센트는 이른바 'AI 육소호(六小虎)'라 불리는 스타트업들 상당수에 지분을 갖고 있다. 말 그대로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거다. 바이촨은 창업 반년 만에 알리·텐센트·샤오미에서 7억 달러를 유치했다. 미국의 빅테크가 유망한 인재와 스타트업을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며 몸집을 부풀리는 것과 달리, 중국의 1세대는 판을 키우고 미래 가치를 돌려 받는 옵션을 사두는 쪽에 가깝다. 물론 이런 배경에는 중국 정부의 역할도 무시 못한다.

넷째, 국가의 인내다. 중국 정부는 82억 달러 규모의 AI 펀드를 조성했고, 지방정부는 연산 자원을 살 수 있는 컴퓨트 바우처와 모델 보조금을 뿌린다. 거대 플랫폼에는 규제를 엄격히 적용하면서도, 새끼 호랑이들에게는 규제 여지를 열어둔다. 혁신이 위축되지 않도록. 개인의 천재성 뒤에 국가의 구조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다. 선전에서 느꼈던 점도 어쩌면 시장의 모순과 불완전함을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정부)이 조정하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런 서사가 이상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알리바바의 후원은 순수한 선의가 아니라 전략적 베팅이다. 텐센트가 중국뿐 아니라 돈 될 만한 한국의 수많은 기업, 스타트업에 투자해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몇 년간 알리바바는 돈을 싸들고 다니며 국내 유니콘에 투자하겠다고 했었다. 새끼 호랑이들이 알리바바의 클라우드와 자본에 의존할수록 향후 독립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을 거다. 국가의 지원 역시, 미래에 대한 투자라기보다는 국가 성장과 국제 무대에서 미중 갈등에 대한 전략적 대처로 봐야 한다.

그래서, 진짜 대단한가

솔직히 아직 중국의 AI가 벤치마크를 제외하고 얼마나 현장에서 효과적으로 쓰이는지는 잘 모르겠다. 딥시크를 잠깐 써보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불편하다는 정도의 느낌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앤스로픽의 Fable 5 사태를 겪고 미국의 통제를 경험하면서 중국 모델에게도 큰 기회가 찾아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이 현재 잘하는 부분은 오픈웨이트다. 누구나 내려받아 돌릴 수 있는 공개 모델은 지금 중국이 최강이다. 즈푸의 GLM-5.2는 지능 지수에서 종합 4위에 올랐고, 문샷이 7월에 내놓은 Kimi K3는 2.8조 개의 파라미터로 역대 최대 규모 공개 모델이 됐다. 지금 코딩 영역에서 경쟁이 엄청나게 치열한데 프런트엔드 코딩 벤치마크에서 세계 1위를 찍었다고 하니 정말 무시 못할 수준이다. 딥시크의 추론 비용은 미국 모델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금은 공개 모델 상위 다섯 중 넷이 중국산이다.

물론 최고의 AI가 어디냐를 물으면 여전히 미국 기업이다. 사용자 선호도 1위는 앤스로픽의 클로드고 나도 클로드가 가장 편하다. 하지만 이 격차가 이제는 초단위로 따라붙었다. 2개월 3개월 격차라는 말이 농담이 아닌 상황이 된 거다. 남은 격차는 '오리지널리티'다. 량원펑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 있다. "중국과 미국 AI의 진짜 격차는 1~2년이 아니라 원천 창조와 모방의 차이다. 이제 따라가기를 멈추고 앞장서야 한다".

우리로 치면 Fast Follower 전략이 이제 막바지에 왔고, Pace setter로 올라선 것이다. 곧 원천 역량, 오리지널리티를 자랑할 날도 멀지 않았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도

사실 국내 창업가들을 많이 인터뷰 해본 입장에서, 중국 AI 씬의 창업가들 스토리를 보며 부러움이 많이 생겼다. 한국도 좋은 인재가 많기로 유명한 나라이고, 치열한 경쟁을 거쳐 대학 입시를 치르는데. 왜 우리는 재수, 삼수를 해서 의대를 가려고 하고, 졸업 후에도 대기업을 위해 삼수, 사수를 한다고 할까?

'인재전쟁' KBS 다큐로도 다뤄졌지만 중국의 최상위 이과 천재는 올림피아드와 야오반을 거쳐 AI와 수학으로 간다. 반면 한국의 최상위 인재는 의대로 진학한다. '공대의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이라는 다큐 제목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2025학년도에 과학기술원(KAIST 등) 지원자는 28% 줄었고, 같은 기간 의대 지원자는 29% 늘었다. 서울대 공대는 정원 850명 중 매년 100명 넘게 1학년 때 그만둔다고 한다. 화학생물공학부의 경우 신입생 4분의 1이 1년 만에 의대 준비를 하러 자퇴했다는 기사도 있었다. 반도체가 있지 않냐고? 연세대와 고려대의 반도체 계약학과는 합격자의 71%가 등록을 포기했다. 어렵게 키워놓은 인재조차 졸업하면 국내에 남기보다 미국 빅테크로 향한다.

자본의 성격도 다르다. 현재 한국의 유니콘은 대부분 소비자 플랫폼이다. 토스가 대표적이다. 빠르게 크고 빠르게 회수하는 시장만 자리잡은 거다. 자본집약적 딥테크에는 자본의 투자나 인내심이 부족하다. 지난 4년간 미국은 대부분 AI 중심으로 229개의 새 유니콘을 만들었다. 한국은 둘이다. 2026년에야 업스테이지가 한국 첫 생성형 AI 유니콘이 됐다.

대기업의 태도도 다르다. 중국의 알리·텐센트가 경쟁자를 일단 키우는 쪽이라면, 한국의 대기업은 유망한 걸 흡수해 내재화하는 쪽에 더 가깝다. 현대차의 2022년 포티투닷 인수가 대표적이다. 4200억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 인수한 포티투닷은 SDV 내재화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했지만, 대기업 내에서 생각보다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 아무래도 순수 과학이나 기술보다 응용을, 원천보다 상용화를 앞세우는 관점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다행히 우리나라도 조금씩 흐름이 바뀌고는 있다. 최근 영재고와 과학고 출신의 의·치대 진학이 2년 사이 44%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반도체 사이클로 인한 반짝 인기일지 모르지만 인재가 다시 이공계로 돌아오는 신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냥 보상만 보고 이공계가 뜨는 건 아니었으면 좋겠다. 문샷의 양즈린은 자신의 영웅으로 스티브 잡스를 꼽으며 "잡스는 취향을 규모 있게 확장한 사람"이라고 했다. 애플의 성공 속에 있는 코드를 정말 제대로 본 거다.

내가 좋아했던 '20세기 소년'에는 '락이 세상을 구한다'는 대사가 나온다. 대학 밴드에서 드럼을 치던 소년은 좋아하던 앨범 이름을 회사에 붙였고, 그 회사가 지금 세계를 흔든다. 그에게는 취향이 곧 꿈이고 열정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부족한 건 인재도 자본도 아니다. 좋아하는 걸 끝까지 밀어붙이도록 기다려주는 시선, 그 낭만을 사치로 여기지 않는 여유. 나는 그게 가장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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