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대가 — 중앙그룹과 레거시 미디어의 부채
2026년 6월, 중앙그룹과 JTBC가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10여 년의 디지털 전환 시도, 공격적 투자, 그리고 광고시장의 구조적 붕괴가 겹쳐 만든 결과였다. 한 언론그룹의 위기는 한국 미디어 생태계 전체의 질문이기도 하다.
2026년 6월, JTBC가 유동화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사흘 뒤 중앙홀딩스, JTBC, 콘텐트리중앙 등 핵심 계열사들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그룹 전체 차입금은 약 2조 8천억 원. 같은 달 중앙일보도 기업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세 차례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종합편성채널과 그 모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초유의 일이다. 한 사건이 부른 결과는 아니다. 10여 년에 걸친 변화의 시도와 실패, 그리고 산업 전체의 구조적 침몰이 겹친 결과에 가깝다.
"강을 건너야 한다"
2016~2017년 무렵 중앙그룹 안에서는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전환 이야기가 자주 나왔다. 종이신문의 위기를 디지털 구독으로 돌파한 거의 유일한 성공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 무렵 한국 신문업계는 구독자 감소, 지면에 대한 관심 저하, 그리고 뉴스 유통 권력이 네이버 중심으로 넘어가는 변화를 동시에 겪고 있었다. "한국의 뉴욕타임스가 되겠다"는 목표에 정답이 있던 건 아니지만, 변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인식만큼은 위아래로 넓게 공유돼 있었다.
이 의지는 사람을 뽑는 일로도 이어졌다. 중앙일보는 창간 50주년이던 2015년 '디지털 퍼스트'를 조직 전체 과제로 내걸고, 카카오 대표를 지낸 이석우를 조인스 공동대표 겸 디지털전략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이석우는 1990년대 초 중앙일보 기자로 출발해 한국IBM, NHN, 카카오를 거친 인물이다. 그가 이끈 전환은 특정 부서에 갇히지 않고 조직 전반으로 퍼졌다.
같은 시기 그룹에는 JTBC라는 또 다른 동력이 있었다. 신문 중심 그룹이 방송 자산을 따로 가졌다는 것 자체가 이점이었다. 2011년 12월 개국한 JTBC는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태블릿PC 단독보도를 계기로 신뢰도와 영향력이 단숨에 뛰었다. 이 시기 JTBC의 뉴스 영향력과 신뢰도는 다른 매체를 멀찌감치 따돌리는 수준이었고, 뉴스 선호도도 KBS를 크게 앞질렀다.
시도와 관성 사이
이 시기 그룹 안에는 개발자와 기자가 함께 일하는 별도 조직이 꾸려졌다. 데이터저널리즘, '썰리' 같은 카드뉴스, '듣똑라' 같은 오디오 채널, 수백만 뷰를 올린 디지털 스페셜이 줄줄이 나왔다. 여러 저널리즘 어워드를 받았고, "그래도 중앙이 제일 잘한다"는 말이 업계에서 반복됐다.
그러나 안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컸다. "그래도 본질은 지면이다", "정치·법조 출입이 핵심 아니냐"는 관성이다. 한 걸음 나갔다가 다시 전통적 방식으로 돌아오는 패턴이 잦았다. 투자와 애착이 공존하는 동안 변화는 부서와 프로젝트 단위에서 일어났지만, 조직 전체의 무게중심을 옮기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다.
이 흐름은 2022년 디지털 뉴스 유료화 모델 '더 중앙 플러스'로 이어졌다. 월 구독료를 받고 전문 콘텐츠를 제공하는 프리미엄 페이월이었다. 국내 종합일간지가 이 규모로 유료화에 나선 건 처음이고, 조선일보 등 경쟁지가 신중했던 것과 달리 중앙일보는 단독으로 이 실험을 끌고 갔다. 2025년 누적 가입자 10만 명을 넘기며 숫자상으로는 목표에 닿았지만, 월 매출은 1억 원 안팎에 그쳤다. '누적' 가입자와 실제 리텐션 사이의 격차, 유료 콘텐츠를 만드는 별도 인력의 부담도 함께 거론됐다. 투자 규모에 견줘 본업의 재무를 떠받칠 수익으로는 아직 이어지지 못했다.
신뢰의 정점과 그 이후
JTBC 뉴스룸은 손석희 앵커 체제 아래 6년 4개월간(2013~2020년) 신뢰도·영향력 조사 1위를 지켰다. 이 시기 JTBC 안에는 스스로를 "참언론"으로 규정하는 정체성이 자리 잡았다. 2025년 언론인 대상 조사에서 "지난 3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 1위도 손석희였다. 2위 김어준의 세 배에 달하는 득표였다. JTBC는 '히든싱어', '아는형님', '냉장고를 부탁해' 같은 예능과 '스카이캐슬', '이태원 클라스' 같은 드라마로 종편 중 독보적인 콘텐츠 경쟁력을 쌓았다. 기존 방송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자긍심이 조직에 넘쳤다. 유튜브 '워크맨'까지 흥행하면서 다른 종편과는 다르다는 자신감도 커졌다.
다만 손석희가 뉴스룸에서 하차한 2020년 이후 시청률과 선호도는 같이 내려갔다. 한때 KBS를 앞섰던 JTBC 뉴스 선호도는 수년 사이 절반 이하로 내려갔다가 2024~2025년 들어 일부 회복했다.
이 시기 JTBC와 콘텐트리중앙은 대형 스포츠 중계권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2019년 JTBC는 한국 비지상파 최초로 2026~2032년 4개 올림픽 중계권을 땄고, 2024년에는 2026 북중미 월드컵 등 4개 대회 FIFA 중계권도 확보했다. 콘텐트리중앙이 여기에 투입한 돈은 약 1,900억 원으로 알려졌다. 다른 방송사와 컨소시엄을 꾸리기보다 단독으로 밀어붙인 점도 눈에 띈다. 성장 전략은 있었지만 수익 전략은 없었다는 말, 방송사 규모에 비해 큰 베팅을 반복했다는 말이 업계에서 나왔다.
종편 생태계의 분화
이 선택을 이해하려면 종편 시장 전체의 구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종편 승인(2010년) 뒤, 종편들은 저마다 다른 전략으로 시장에 안착했다. TV조선은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같은 트로트 오디션으로 중장년·고연령 시청자를 잡았고, '강적들' 같은 정치 시사 토크쇼로 저비용·고시청률 모델을 만들었다. 이런 정치 토크쇼는 유튜브 추천 알고리즘과 맞물려 보수 성향 정치 유튜버가 자라는 토대가 됐다. 이들이 유튜브 후원으로 영향력을 키운 뒤 다시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나오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그 과정에서 좌우 양쪽의 정치 콘텐츠 소비가 한층 더 갈렸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JTBC는 다른 길을 갔다. 2020년 보도 방향을 '합리적 진보'로 공식 표명했고, 트로트·정치 토크쇼 중심의 저비용 모델보다 드라마·예능 같은 고비용 오리지널과 스포츠 중계권에 집중했다. 콘텐츠 경쟁력에서는 차별화 요인이었지만, 동시에 다른 종편보다 구조적으로 더 무거운 제작비를 짊어지는 결과로도 이어졌다.
광고시장의 구조적 붕괴
JTBC가 고비용 구조를 감수하며 콘텐츠에 베팅하는 사이, 광고 시장의 무게중심은 빠르게 옮겨갔다. 지상파 광고매출은 2015년 이후 절반 이하로 줄었고, 방송 전체 광고도 2022년 이후 2년 연속 감소했다. 같은 기간 모바일 광고는 디지털 광고의 4분의 3을 넘어서며 계속 커졌다.
미디어 소비 구조도 달라졌다. 유료방송만 보는 시청자는 줄고 OTT만 이용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유튜브는 국내 OTT 이용률 1위로 굳건하다. 평일 TV 시청시간도 2019년 이후 20분 가까이 줄었다.
이런 환경에서도 중앙그룹은 콘텐츠 투자를 이어갔다. 드라마 제작사 SLL중앙(옛 JTBC스튜디오)을 앞세워, 결국 콘텐츠가 글로벌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전략을 유지했다.
본업 밖의 다각화, 그리고 그 성과
중앙그룹은 신문·방송 밖에서도 꾸준히 활로를 찾았다.
신문배달 인프라를 활용한 물류가 그중 하나다. 중앙일보는 2020년 자회사를 통해 서울·수도권·지방의 신문 배송 거점을 활용한 도심형 물류센터 기반 라스트마일 배송에 뛰어들었다. 신문배달망의 접근성을 살린 시도로 주목받았지만, 이후 그룹의 핵심 수익원으로 자리 잡았다는 근거는 뚜렷하지 않다.
같은 시기 콘텐트리중앙도 콘텐츠·공간 영역에서 인수를 이어갔다. 2021년 미국 드라마 제작사 wiip을 인수했으나 실적은 부진했다. 2022년에는 키즈카페 등 공간사업을 하는 플레이타임그룹을 1,250억 원에 인수해 메가박스에 현물출자했고, 같은 해 럭셔리·라이프스타일 사업을 위해 HLL중앙에 540억 원을 출자했다. 메가박스도 일부 지점을 빙상장으로 돌리는 등 본업과 엮은 신사업을 시도했다. 개별적으로는 다각화 논리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콘텐트리중앙의 순차입금을 키우는 쪽으로 작용했다.
2025년에는 옥외광고(OOH) 시장에도 들어갔다. 중앙일보는 KT그룹 계열사 KTis의 디지털광고사업 부문(타운보드)을 532억 원에 인수해 전국 약 3,650개 아파트 단지, 6만 7천여 대의 엘리베이터TV 광고매체를 확보했다. 기존 OOH·디지털·지면광고와 묶어 수익을 낸다는 계산이었다. 앞서 2023년에는 계열사 메가박스중앙이 갖고 있던 삼성동 옥외광고물 사업권을 152억 원에 넘겨받아, OOH 매출 자체는 꾸준히 키워왔다. 다만 옥외광고 시장이 언론사 중심으로 재편되는 데 대한 우려, 협찬과 광고의 경계가 흐려질 가능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함께 나왔다.
규모가 가장 컸던 다각화는 영화관, 메가박스다. 콘텐트리중앙은 2020년 11월 메가박스 지분을 전량 인수했다. 그러나 극장 산업의 회복이 더뎠고, 투자 부담은 모회사로 옮겨갔다. 2025년 말 기준 부채비율이 2,212%까지 치솟았고, 모회사 콘텐트리중앙도 메가박스를 받치느라 대여금을 2024년 252억 원에서 2025년 1,680억 원으로 급격히 늘렸다. 롯데시네마와의 합병설도 돌았지만, 투자자가 요구한 담보 조건을 맞추지 못해 무산됐다. 메가박스중앙은 결국 콘텐트리중앙과 함께 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레저 부문에는 평창 휘닉스 파크와 제주 휘닉스 아일랜드를 운영하는 휘닉스중앙이 있다. 2025년 말 그룹 전체는 4,420억 원의 순손실을 냈고, 이듬해 콘텐트리중앙의 전환사채 상환이 예정된 상황에서 그룹은 휘닉스중앙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코로나19로 한 차례 크게 흔들린 리조트 산업이 그 뒤로도 충분히 회복되지 못한 가운데 나온 결정이다.
본업이 흔들리는 동안 여러 신사업으로 활로를 찾은 것 자체는 합리적인 시도였다. 다만 이들 대부분이 단기간에 그룹 재무를 떠받칠 현금흐름을 만들지는 못했고, 오히려 본업과 함께 돈을 빨아들이는 또 다른 부담으로 쌓였다. 콘텐트리중앙이 2026년 4월 추진한 아레스매니지먼트와의 3천억 원 규모 투자 유치 협상이 결렬된 것으로 알려진 일도 같은 흐름 위에 있다. 그 과정에서 계열사 간 자금대여와 지급보증이 쌓이며 개별 사업의 위험을 그룹 전체가 떠안는 구조가 됐다. 그룹 차원에서 재무 위험을 미리 점검하고 투자 속도에 제동을 걸 내부 견제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는 목소리도 있다.
무엇이 남았나
업계에서는 중앙그룹의 위기를 두고, 외형을 키운 성장기에서 공격적 투자가 두드러진 시기로 넘어왔다고 본다.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그룹이라는 위상 때문에 "재벌 걱정할 정도냐"는 인식이 오래 있었지만, 실제 재무는 그 평판과 거리가 있었다.
물론 종이신문 시장의 붕괴, 방송 광고시장의 구조적 위축은 한국 언론 산업 전체의 문제다. 방송사업 매출은 2022년 이후 2년 연속 줄었고, 메가박스중앙이 겪은 어려움도 CGV·롯데시네마를 포함한 영화관 업계 전체의 침체와 무관하지 않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시장이 알아준다는 믿음, 디지털 전환과 유료화가 본업의 위기를 상쇄해줄 거라는 기대는 중앙그룹만의 것이 아니었다. 한국 미디어 업계에 두루 퍼진 전제였다.
다만 그룹이 감당할 체력 이상으로 스포츠 중계권·콘텐츠·다각화에 투자를 이어갔다는 지적도 분명하다. 회생 신청 직후 콘텐트리중앙 거래가 정지되고, 메가박스 온라인 결제에서 카카오페이·토스페이가 빠지는 등 여파는 빠르게 현실이 됐다.
JTBC가 2016년 국정농단 보도로 쌓은 신뢰, '스카이캐슬'이나 '부부의 세계' 같은 드라마 IP는 지금도 값나가는 자산이다. 홍정도 부회장도 "회생절차는 회사를 정리하려는 게 아니라 채무 부담을 조정해 근본적으로 정상화하려는 결정"이라고 밝혔다. 한국 미디어 산업에서 중앙그룹과 JTBC가 차지해온 자리를 생각하면, 이 위기가 어떻게 정리되는지는 한 그룹의 문제를 넘어 한국 미디어 생태계의 다양성과도 맞닿아 있다. 회생 이후 그룹이 어떤 모습으로 재편될지, 그 과정에서 어떤 자산과 콘텐츠 경쟁력을 지켜낼지가 다음 관전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