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말 중국 선전을 다녀왔다. 휴머노이드 로봇 기업 림스다이내믹스, 하드웨어 창업 인큐베이터 엑스봇파크, 화웨이 본사, BYD, 전자부품 상가 화창베이 등을 나흘간 돌아보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격차는 이제 따라잡기 어렵겠다"였다. 함께 간 서울대 교수님들도 같은 걱정을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공학계 석학인 차석원 교수님은 이동하는 내내 "와, 미쳤네. 재밌네, 재밌어"를 혼잣말처럼 반복하셨는데, 나중에 여쭤보니 기술적 호기심과 쇼크, 두려움과 걱정이 뒤섞인 반응이었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는 말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시제품이 나오는 속도, 부품 하나 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 실증 현장의 밀도 등 한국 현장에 익숙지 않은 나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국내 언론이 중국을 애써 무시하고, 글로벌 경쟁력과 기회를 강조할 때 현장에서 본 상황은 중국과 한국의 격차가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로봇 밀도 세계 1위"라는 착시

최근 정부는 2030년까지 피지컬 AI 세계 1위, 휴머노이드 로봇 글로벌 점유율 20%를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성장펀드 등을 통해 올해만 16조원을 투입하겠다고 했다. 제조업 로봇 밀도 세계 1위라는 강점을 앞세우며 경쟁력이 있다는 부연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로봇 밀도 1위는 정해진 동작을 반복하는 자동화 설비의 밀집도이지, 스스로 판단하고 개선하는 임베디드 AI용 데이터가 아니다. 자동화와 지능화는 다른 층위의 문제인데, 지금의 우리가 강조하는 자부심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핵심은 데이터의 성격이다. 피지컬 AI는 로봇이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패하고, 그 결과를 다시 학습해 개선하는 사이클로 만들어진다. 이 사이클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돌리느냐가 격차를 벌린다. 정부가 추진하는 업종별 데이터팩토리도 숙련공의 노하우(손의 각도, 힘의 분배, 작업 순서)를 기록하는 방식에 가깝다. 과거의 좋은 동작을 잘 담아내는 것과, 로봇을 현장에 던져놓고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찾아 개선하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좋았던 베스트를 학습하는 것은 효율성의 재현이지만 매일 실패하며 몸으로 배우는 학습 방식은 지금의 문제 해결과 미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학습 능력에 가깝다. 마치 학생이 정답을 외우는 것과,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차이라고 할까.

BYD에서 림스다이내믹스까지, 물량전의 규모

중국은 후자를 하고 있고, 그것도 압도적인 규모로 하고 있다. BYD는 창사·선전 공장에 자체 개발 로봇 150여 대를 실제 라인에 투입해 자재 운반과 라벨링을 맡긴다. 로봇뿐 아니라 자율주행용 AI칩까지 자체 개발해, 로봇·반도체·완성차를 한 회사 안에서 순환시킨다. 유비테크는 자동차 검수 현장에, 갤봇은 부품 분류 작업에 로봇을 밀어넣는다. 완성된 기술을 기다리지 않고, 일단 현장에 넣어 부딪히게 한 뒤 그 데이터로 개선한다.

림스다이내믹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설립 4년차에 불과한 이 회사는 엔지니어가 전체 인력의 70%를 차지한다. CEO는 교수 출신으로 이론적 기반 위에 비즈니스 감각을 갖췄다. 인상적이었던 건 자사 휴머노이드 '올리' 제품 자체를 자랑하기보다, 경쟁사 제품과 결합했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는지를 엄청 설명했다는 점이었다. 제로섬으로 타사보다 우리가 우월하다는 게 아니라 생태계 전체의 크기를 키우는 쪽을 택한 것이다. 시뮬레이션 기반 학습과 클라우드 컴퓨팅 같은 미국 기술 생태계와 독립적인 '다음 단계'를 위한 기초 인프라도 이미 자체 구축해뒀고, 이걸 창업 생태계 전체가 바로 가져다 쓸 수 있게 열어뒀다. ROI보다 전략적 가치와 AI 중심 사고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는 것도 인상 깊었다. 아직 제품 자체는 세탁로봇, 상업공간 퍼포먼스용의 PoC 단계가 많았지만, 미국 제품보다 훨씬 저렴한 공장 패트롤 로봇이나 주유 로봇처럼 결합 아이디어에 따라 활용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자동차·물류 분야에 적용되면 중국 기업이 공격적인 저단가로 한국에 대량 공급한 뒤 그 과정에서 데이터를 쌓아갈 가능성이 커 보였다. 정부가 피지컬 AI를 지원한다면, 로보틱스 단계에서 국내 선도기업에 보조금을 얹어줘 데이터를 제대로 쌓을 수 있게 하는 실질적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림스다이내믹스는 개별 로봇 한 대의 성능을 자랑하는 대신, 최근 로봇 수십 대를 동시에 조율하는 "확장 가능한 자율 배치" 시연을 강조하고 있다. 한 대를 얼마나 똑똑하게 만드느냐가 아니라, 몇 대를 얼마나 값싸게 늘릴 수 있느냐를 이미 마케팅 포인트로 삼는 단계까지 온 거다. 중국의 대량 드론 군집 주행 같은 모습이 산업 현실에 적용된다는 걸 상상하면 무섭다. 오는 8월엔 베이징에서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대회가 열리는데, 푸젠성 차 농장에서 찻잎을 따고 재난 구조 시나리오를 수행하는 실전형 로봇이 이미 다수 보급되어 있다. 통계로 봐도 무섭다. 중국은 이미 세계 휴머노이드 시장점유율 78%를 차지했고, 선전에만 휴머노이드 로봇 본체 개발 기업이 28곳, 전국적으로는 140곳이 넘는다. 유비테크 한 곳의 기업가치가 13조원에 달할 정도로 데카콘급 기업도 여럿이다. 선전에서 만난 한 부품기업 관계자는 "여기선 며칠이면 시제품이 나오는데, 실리콘밸리조차 따라올 수 없다"고 했다. 이런 현실을 보고나니 언론에서 말하는 "로봇 밀도 세계 1위"는 오히려 현실을 제대로 못보게 하는 요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증 속도를 떠받치는 인프라: 화창베이와 엑스봇파크

더 놀라운 부분 중 하나는 실증 속도를 떠받치는 인프라였다. 화창베이는 전자부품 도매상가이자 시제품 조달 성지다. "뭐든 2시간 안에 구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로봇 부품부터 프레임까지 표준화된 부품이 쌓여 있다. 다들 드라이기나 에어팟 짝퉁을 저렴하게 사는 곳으로 알고 있지만, 훨씬 무서운 곳이다. 과거 용산 한 바퀴를 돌면 탱크를 만들 수 있다는 농담처럼, 여기 한 바퀴 돌고 나면 웬만한 슈퍼컴급 컴퓨터를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또 화창베이에서 몇 블록 떨어진 엑스봇파크도 흥미로웠다. 이곳은 DJI의 창업 멘토였던 리쩌샹 교수가 만든 하드웨어 창업 인큐베이터다. 12년간 스타트업 생존율이 18%를 넘는다고 들었는데, 진짜 대단한 숫자다. 젊은 인재들이 스타트업에 인생을 걸고 몰릴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로젝트 기반 학습(PBL)을 단순한 교육 방법론이 아니라 거의 바이블처럼 실행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모두의 창업을 이야기하지만, 사실상 창업의 리스크를 알면 뛰어들지 못하는데, 5개 중 1개는 살아남는다고 하면 또 이야기가 다르다.

엑스봇파크는 설계·연구·제조를 한 장소에 묶어놓아서, 스타트업 하나가 처음부터 공급망을 새로 만들 필요가 없다. 이 SCM 제조지원 모델을 보면서, 한국도 산학협력을 통해 중후장대 제조 분야에 공유 공장을 펀딩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업의 CSR도 장학금 지급에 그치지 않고 여름·겨울 캠프 같은 대학 연계 프로그램으로 이어가는 시도가 필요해 보였다. 아이디어가 있으면 화창베이에서 부품을 구하고, 엑스봇파크 같은 공유 제조 플랫폼에서 며칠 안에 프로토타입을 뽑아 곧바로 대량생산 라인으로 넘길 수 있는 구조가 부러웠다. 이런 형태가 단단히 자리잡고 있으면 실증-데이터 사이클의 속도를 물리적으로 떠받칠 수 있다. 한국은 기업마다, 같은 산업 안에서도 부품 규격이 제각각이라 시제품 하나 만드는 데도 여러 벤더를 거쳐야 한다. 데이터 격차 이전에 이 생산 인프라 격차부터가 크다.

소버린 AI 담론의 함정, 그리고 속도의 차이

미국의 AI 모델 수출통제로 최근 주목받는 소버린 AI 담론도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 미국이 중국산 AI·로봇 기술을 배제하는 중이라 반사적으로 한국의 로보틱스가 주목받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건 미·중 진영 구도가 만든 반사이익이고, 그 구도에 올라타는 것이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화웨이에 방문해 보니 자동차 시장에서는 완성차 업체와 협력하는 모델을 기본으로 가져가면서도, AI칩과 운영체제 하모니OS, 제조 역량, 다중 칩 병렬 통합, 자율주행 등은 자체적으로 만들고 수직으로 묶어가고 있었다. 칩 통제 속에서도 중국이 자체적으로 생태계를 만들어 경쟁력을 만들고 있는 거다.

화웨이는 매출의 10~20%를 R&D에 꾸준히 투자하는데 그중 상당수가 수학이나 재료과학 같은 기초과학에 들어간다는 점도 인상 깊었다. 이건 미국이 벽을 쌓고, 수출을 안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미국 규제가 강해질수록 화웨이 같은 기업은 핵심 기술을 통째로 자국화해 버린다. 중국은 오픈소스로 로봇 플랫폼을 개방하며 생태계를 넓히는 동시에, 화웨이 같은 기업을 통해 핵심 기술은 수직 계열화하고 있다. 미국이 클로드 최상위 모델을 막으며 폐쇄적 통제를 진행하고 있지만 중국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건 따라잡고 있다. 막고 통제하는 것과 열린 생태계 중 장기적으로 어느 쪽이 더 많은 데이터와 인재, 표준을 끌어모을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돌이켜 보면 미국이 중국을 두려워하는 핵심은 '속도'인 것 같다. 방문했던 선전이 어촌 마을에서 서울을 능가하는 초대형 도시가 된 게 고작 십수 년이다. 도시 거주 평균 연령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몰려 있고, 이들이 미친 듯한 속도로 경쟁하고 있었다. 엑스봇파크부터 방문했던 대부분의 스타트업에서 속도·경쟁·효율성을 강조하고 있었고, BYD 관계자는 아예 "우리의 경쟁자는 시간"이라고 했다. 생성형 AI까지는 중국이 무서운 추격자였지만, 로보틱스·모빌리티·피지컬 AI에서는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의 역동성도 서울 거리는 최근 몇몇 줄 서는 식당 말고는 텅 비어 있는데, 화창베이나 완샹톈지 같은 선전의 상권은 인파로 가득했다. 이건 단순히 경기가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전체의 에너지 밀도 차이로 봐야 할 것 같았다.

냉정한 진단과 실용적 전략

한국이 로봇 강국이냐, 세계 최정상급이냐고 하면 솔직히 말해 아닌 것 같다. 자동화에는 강했지만 지능화에는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냉정하게 맞다. 핵심 부품 국산화율은 30~40%대고, 산업 생태계는 대기업 중심이다. 국내 피지컬 AI 스타트업이 150여 개 되고 투자도 늘고 있다지만, 아직은 중국의 압도적인 실증 규모와 비교하기 힘들다. 서울포럼 2026에서 로봇 스타트업 대표가 한국 로봇 경쟁력의 핵심은 기술력이 아니라 현장 데이터 확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지금 경쟁력이 있는 조선·철강·자동차 같은 제조 현장 데이터를 확보해야 중국과 경쟁해 볼 작은 기반이라도 만들 수 있다. 정부 발표와 언론 칼럼에선 "세계 1위", "글로벌 1강"을 말하지만 냉정히 보면 잡아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경쟁에 내몰려 있는 게 현실이다.

물론 상황을 비관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제조업 기반, 반도체·배터리 공급망, 우수한 엔지니어는 우리가 가진 자산이다. 함께 간 서울대 교수님들의 결론도 '모든 영역에서 중국을 앞서겠다는 목표 자체가 비현실적이니, 중국이 만든 표준화·모듈화된 생산 생태계 위에 올라타면서도 조선·반도체 공정·방산처럼 우리가 이미 강한 영역을 훨씬 뾰족하게 가다듬어 다른 나라가 쉽게 못 따라오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였다. 현실적인 전략이 필요하단 얘기였다. 완제품 경쟁만 할 필요도 없다. 중국의 로봇 대량 보급 자체가 한국 부품기업에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감속기, 액추에이터, 3D 비전 센서처럼 중국이 처음부터 전부 자체 개발하기보다 외부에서 조달하는 영역들이 있다. 완제품 시장에서 정면으로 이기겠다는 목표 대신, 중국의 실증 물량 자체를 우리 부품·모듈이 올라탈 수 있는 파이프라인으로 보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관점도 필요하다.

슬로건이 아니라 실증 인프라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세계 1등이 될 수 있다는 슬로건이 아니라, 로봇을 현장에 던져 넣고 실패 데이터를 쌓는 실증 인프라, 그리고 표준화된 생산 기반에 대한 과감한 투자다. 지금 제조업의 데이터가 어떤 방식으로 쌓이고 있는지, 그 데이터가 실제로 로봇을 더 똑똑하게 만들고 있는지 먼저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단순히 "세계 1위"에 집착하면 로봇이 걷고, 인사하고, 마라톤을 완주하는 화려한 데모 쪽으로 관심이 쏠린다. 언론에 나기 좋고, 국회 보고에도 넣기 좋고, 정치적으로 성과를 보여주기도 쉽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과 격차를 좁히는 건 실증 건수, 실패 데이터량, 현장 투입 시간 같은 지루한 지표다. 중국이 앞서가는 이유도 지겨움을 버틴 물량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 설계 단계에서부터 "몇 년 안에 세계 몇 위"가 아니라 "올해 몇 개 현장에서 몇 시간의 실증 데이터를 쌓을 것인가" 같은 목표가 필요하다.

회사 안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하다 보면, AI 도입, 디지털 트윈, 피지컬 AI 같은 말을 듣고 쓰게 된다. 그때마다 우리가 말로 포장하는 실체가, 정말 그 포장만큼의 실질을 갖고 있는지를 묻게 된다. 우리는 정말 경쟁력 있는 AI 드리븐 회사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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