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이 줄었다. 무언가를 너무 빨리 만들 수 있게 된 탓이다. 고민하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다.

원래 제작은 장인의 영역이었다. 그리고 그 만듦새의 가치가 아이디어를 뛰어넘는 경우도 많았다.

만드는 사람의 두 부류

아이디어는 있는데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직접 실행할 능력을 갖췄거나, 실행해 줄 장인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했다. 이런 행동력을 갖춘 사람들이 사람을 모으고 팀을 꾸려 스타트업을 만들었다. 속도감 있게 결과물을 찍어내는 방식이다.

내가 본 많은 창업자들이 이렇게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었다. 좋은 배경, 화술, 사람을 감화시키는 열정과 스피치. 저마다의 무기를 총동원해서.

또 다른 부류는 사이드 프로젝트로 조용히 뭔가를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다. 필요해서 만들어 보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그걸 사업으로 키울 용기까지는 없는 경우가 많다. 나도 여기에 속한다. 혼자 신나게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이다 흐지부지 끝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20년대 들어 사이드 프로젝트의 폭이 넓어졌다. 좋아서 하는 것을 넘어 투잡, 수익 파이프라인으로 시도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스타트업 붐이 지나고 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며 리스크를 최소화한 1인 기업이 늘어난 흐름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딸깍'의 시대, 깎는 사람들

예전엔 실행이 희소했다. 그래서 실행할 줄 아는 사람, 장인이 귀했다. 그런데 AI가 실행의 값을 0에 가깝게 떨어뜨렸다. 모두가 장인이 된 세상에서 남는 희소성은 하나뿐이다. '진짜로 겪은 문제.' 무엇이든 만들 수 있게 된 순간, 무엇을 만들지가 유일한 질문이 된다.

최근 이들이 날개를 달았다. AI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딸깍' 한 번이면 결과물이 나오는 세상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렇게 전부를 맡긴 결과물이 대체로 그저 그렇다는 것이다. 껍데기는 그럴듯한데 알맹이는 쓸모없는 앱과 프로젝트가 쏟아진다.

AI는 '어떻게 만들지'엔 완벽하게 답하지만 '왜 만들어야 하는지'엔 답하지 못한다. 한 번도 불편을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깍의 결과물은 그럴듯하지만, 정작 누군가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진 못한다. 완성도와 쓸모는 다른 축의 문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좋아서', '필요해서', '하나하나 깎아 자기에게 맞추며' 만드는 사이드 프로젝터들이 중요해졌다.

이들의 무기는 거창하지 않다. 자신이 첫 번째 사용자라는 것. 기업의 개발은 니즈가 기획자에서 디자이너로, 다시 개발자로 넘어가며 조금씩 닳는다. 딸깍은 개발 비용을 없앴지만, 동시에 '직접 겪은 사람'마저 지워버리기 쉽다. 사이드 프로젝터는 겪은 사람이 곧 만드는 사람이라, 그 사이에 손실이 없다.

이들은 마음은 가볍지만 기획과 니즈만큼은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광적인 고객 집착으로 최고의 프로덕트를 빚어내는 수준까진 아니더라도, '딸깍'의 시대에 그나마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역할은 이들 몫이 되지 않을까.

니즈에서 출발한 것들이 폭발한다

물론 대부분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여전히 흐지부지 끝난다. 나부터가 그렇다. 하지만 시도의 비용이 0에 가까워지면, 살아남는 소수의 절대량이 폭발한다. 살아남는 것과 버려지는 것을 가르는 건 기술력이 아니다. 출발점에 진짜 니즈가 있었는가다.

맨 앞의 프런티어가 AI 그 자체를 개척한다면, 이들은 수많은 '딸깍' 사이에서 가치 있는 결과물을 골라 만들고 퍼뜨리는 역할을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업이 아니라 '니즈'에서 출발한 개발이 이뤄지는 영역에서 재미있고 참신한 것들이 폭발하리라 생각한다.

희소성은 계속 자리를 옮긴다. 한때는 실행이 희소했고, 지금은 진짜 니즈가 희소하다. 그다음은 아마 '발견됨'이 될 것이다. 모두가 만들 수 있게 되면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병목이 아니다. 쏟아지는 결과물 가운데 누구에게 닿고 누구에게 발견되느냐가 다음 가치가 된다.

그래서 나는 이들을 엮어내는 일에 관심이 간다. 예전의 개발자 커뮤니티가 기술을 매개로 정보를 나누는 곳이었다면, 이제 필요한 건 서로 다른 영역의 서로 다른 개성들이 본업 아닌 프로젝트를 만들고 배포하고, 서로의 결과물을 알아보고 퍼뜨리는 장이다. 만드는 사람과 알아보는 사람이 같이 모이는 곳.

딸깍이 쉬워질수록, 무엇을 깎을지 아는 사람과 그것을 알아보는 사람의 자리는 오히려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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