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의 CSR 활동을 정리하다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좋은 일을 안 한 게 아니다. 오히려 너무 많이 했다.

지역 공헌, 장학 사업, 환경 캠페인, 임직원 봉사. 수십 년간 쌓인 프로그램이 부서마다, 사업장마다 흩어져 있다. 각각은 다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걸 한 줄로 설명해 달라고 하면 아무도 못 한다는 거다.

레거시를 정리한다는 것

처음엔 단순한 작업인 줄 알았다. 흩어진 프로그램을 모아 표로 만들고, 비슷한 것끼리 묶으면 될 줄 알았다.

아니었다.

프로그램마다 시작된 맥락이 다르다. 누군가의 숙원 사업이고, 어떤 건 외부 요청으로 시작됐고, 또 어떤 건 그냥 관성으로 매년 반복돼 왔다. 표 한 칸에 넣는 순간 "이걸 왜 여기 넣었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정리는 기술이 아니라 설득에 가까운 일이었다.

대표 CSR이라는 한 줄

가장 어려운 건 "우리 회사가 대표적으로 무엇을 하는 회사인가"를 정하는 일이다.

에너지 회사답게 환경인가. 지역 기반 기업답게 상생인가.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인가. 다 맞는 말이라서, 다 담으면 아무것도 안 남는다. 무엇을 안 할지를 정해야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가 보인다.

업과 맞닿은 CSR

예전에 오늘의집에 있을 때 가구 업사이클링 해커톤을 기획한 적이 있다. 물류센터에서 배송 중 훼손된 가구 1,000여 점을 한꺼번에 폐기한다는 사내 메시지를 우연히 봤다. 쓸 만한 가구가 버려지는 게 아까웠다.

기부금을 내는 CSR은 깔끔하다. 하지만 가구를 파는 회사라는 사실과는 별 상관이 없다. 그래서 다르게 가보기로 했다. 버려질 가구를 소재로 신안 암태도 창고에서 초등학생부터 목수까지 30여 명이 1박 2일 동안 작품을 만들었고, 서울 돈의문에서 석 달간 전시한 뒤 지역에 전량 기부했다.

자전거 거치대, 무한 미러 테이블, 갯벌 서랍장. 세상에 하나뿐인 가구들이 나왔고, 회사의 첫 CSR 사례로 남았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좋은 CSR이다. 회사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와 맞닿아 있고, 그래서 이야기가 된다. 돈을 얼마 썼는지가 아니라, 왜 그 회사가 그 일을 했는지가 설명되는 것.

지금 회사에서 하려는 것도 결국 그거다. 흩어진 활동을 우리 업과 연결되는 한 줄 아래로 다시 모으는 일.

보고라는 숙제

체계를 짜는 것만큼 어려운 게 보고다.

CSR은 매출처럼 깔끔한 지표가 없다. "이 방향이 맞다"를 설득하려면 결국 논리와 그림을 같이 보여줘야 하는데, 정성적인 이야기를 정량적으로 듣고 싶어 하는 자리에서 그 간극을 메우는 게 매번 숙제다. 전략안을 몇 번이나 고쳤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대표 CSR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고, 레거시도 체계화했다.

그러면서 하나는 분명해졌다. 좋은 일을 많이 하는 회사보다,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말할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게 먼저다. 흩어진 선의를 하나의 방향으로 모으는 일.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건 그거다.

결과가 더 나오면 다시 한번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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