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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모호성과 '밀당'

흔히 외교가에서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할 수 있는 선택으로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을 많이 든다. 이는 첨예한 이슈에서 행위주체가 전략적으로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위험부담을 더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면 과거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를 두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해왔다. 최근 센카쿠열도와 관련한 중-일 간의 갈등 문제도 비슷한 사례가 되겠다. 굳이 어느 한편에 서서 위험해 지기보다 살짝 떨어져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이다. 이런 경우 의도적으로 전략적 모호성을 택하긴 하지만 주변의 역학관계에서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많기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택하는 경우도 있다.  반면 최근에 칼럼에서 보이는 '미-중 사이에서 몸값이 높아진 한국'의 경우 양쪽으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전통적 동맹국인 미국의 경우 '아시아로의 회귀'를 내세웠지만 중동에 더해 동아시아까지 챙기는 것은 힘에 부친다. 일본을 파트너로 삼긴 했지만, 국내정치요소가 너무 크게 작용하는 일본인지라 썩 믿음이 가진 않을게다. 그러다 보니 한국을 끌어들여 한-미-일 3각구도로 가는게 최선이다. 북한이라는 명분도 있다. 중국의 경우 아직 미국과 다툴 의도는 크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동네 안방에서 일본이 커지는 건 못 본다. 그러다 보니 최근 가까워진 한국을 우군 삼아 일본을 견제하려는 거다. 역시 명분도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물론 장기적으로는 중국봉쇄전략을 우려해 미국을 견제하는 심리가 있을게다. 거창하게 설명했지만, 어찌됐던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게 '구애' 혹은 '협박'을 병행하며 내편에 서라고 요구하는게 지금 구도다. 그럼 한국은? 적당히 난감해 하며 튕기는 중이다.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이름으로. 사실 미국을 버리긴 힘들다. 좀 지는 해지만 동네에서 제일 잘나가던 친구고 돈도 많고 힘도 쎄다. 가끔씩 일본에게 잘해주는게 밉긴 하지만 없으면 불안하다. 옆집에 전쟁광 북한이 살고 있어서다. 중국은 좀 촌스러워 보였는데 갑자기 졸부가 됐다. 중국이 없으면 동네서 먹고 살기 힘들다. 문화도 비슷하고 일본을 미워하는 것도 맘에 든다. 너무 커지는게 무섭긴 하지만 옆집에 사는 북한과 친척이라 북한을 좀 컨트롤 해 줄것 같기도 하다.  결국 한국은 미국 손을 잡고 스리슬쩍 중국에 양다리 정도를 걸치고 지내왔다. 적당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MD 대신 KAMD 한다고 하고, TPP도 하고 RCEP도 한다고 하는 식이다. 문제는 양쪽 다 조금씩 열받을 수 있다는 것. 바이든의 '배팅'이나 왕이의 '선택' 발언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경고다. 아니라고 해도 양다리 좋아할 사람이 어딧을까. 그럼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느 한쪽에 올인하기엔 상황이 만만찮다. 그럼 결국 전략적 모호성 +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지금 한국이 밀당을 안하는 건 아니다. 미국이 일본에 눈을 돌리면 중국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짓고, 중국이 ADIZ로 시끄러우면 한미일 회담을 하는 식으로 적당히 밀당을 하고 있다. 하지만 종국적으로 양다리의 종말이 비극으로 끝나듯, 이 전략도 한계에 부딪힐 위험성이 있다. 서설이 길었다. 그리하여, 전략적 모호성을 연애의 공간으로 가져오면 Pre-연애 단계에서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는 전략이 된다. 요즘말로 썸을 타는 단계에서 서로의 본심을 숨기는 전략.  모호성 속에서 서로 간보기를 하는 거다. 무슨 연에 컨설턴트니 하는 이들이 답장을 기다렸다 해라~ 이런 조언을 하는 것도 '밀당'과 전략적 모호성에 범주에 들어가는 전략이다. 물론 모호성의 단계를 깨고 '연인'이 되기 위해서는 '신뢰'를 쌓고 도박을 해야 한다. 고백이라는 도박을 하는 순간 공은 상대방에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절의 위험이 있는한 합리적 행위자는 배팅을 하기 쉽지 않다. 이건 게임이론의 죄수의 딜레마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데 상대방이 자백을 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 최선의 선택(둘다 부인)보다는 최악을 피하는 방향(결국 둘다 자백)으로 선택을 하는 것과 같다. 약삭빠른 우리들은 고백-연인으로 이어지는 상황보다 썸타기+간보기의 상황이 지속할 확률이 높다는 거다.  한미중의 경우처럼 3자구도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경우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고 또 바람직한 상황이 아니니 설명을 생략하자. 사랑은 셋이 아니라 둘이하는거다) 여튼 정리하자면 전략적 모호성이랑 약자의 위험회피 전략의 일환이고, 요즘 우리네가 썸은 타도 연애를 잘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는 거다. 적당한 밀당은 긴장관계를 높여 매력을 높이기도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은 오고야 만다는 것. 그리고 그 때를 준비하지 않으면 결국 다시금 외톨이가 되고 만다는 것. 한국외교와 썸남 썸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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