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하루에 버튼 열 개를 만들어준다. 문제는, 그중 아홉 개를 지울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투자자 파룰 굽타가 쓴 글이 테크 업계에서 조용히 퍼졌다. 제목은 「Taste is the new 10x」. 10x 엔지니어란 동료 열 명 몫을 혼자 해내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그 기준이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실행 속도가 더 이상 희소한 자원이 아닌 시대, 진짜 경쟁력은 **취향(taste)**이라고.

나는 이 주장이 엔지니어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기자 일을 하면서, 그리고 지금 홍보 일을 하면서 내내 씨름해온 문제와 정확히 같았다.

실행의 민주화, 판단력의 과두제

글쓰기 툴 한 번만 열어봐도 안다. 보도자료 초안은 이제 3분이면 나온다. 슬라이드 구성안, 인스타그램 캡션, 유튜브 스크립트도 마찬가지다. 코드도 그렇다. 원하는 기능을 말로 설명하면 GPT나 Claude가 작동하는 코드를 뱉어낸다.

그러면 무엇이 어려운가.

굽타의 표현을 빌리자면 "AI는 아름답게 틀린 것을 만드는 일을 너무 쉽게 만든다(AI makes it trivial to build the wrong thing beautifully)." 완성도 있어 보이고, 기능도 돌아가고, 형식도 갖췄다. 근데 아무도 안 쓴다. 아무도 안 읽는다. 아무도 안 믿는다.

문제는 실행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지 판단하는 것이다.

2023년 이후 전 세계 스타트업 수는 폭발했다. 런치패드·Y Combinator 졸업생 수는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앱 출시 속도도 그렇다. 그런데 살아남는 서비스는 줄었다. 만드는 것보다 선택이 어렵다는 증거다. 시장이 포화된 게 아니라, 포화된 것은 무비판적 실행이다.

편집자의 눈으로 보는 엔지니어

굽타가 소개한 사례가 인상 깊었다. 한 엔지니어가 일주일 걸려 검색 기능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스로 그것을 지웠다. 더 나은 기본값이 그 기능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취향이다. 더 정확히는 편집력이다.

나는 기자 시절에 편집장을 두려워했다. 취재한 것 중 열에 아홉을 잘라내기 때문이다. 처음엔 억울했다. 나중엔 이해했다. 그게 글을 살리는 일이었다. 편집장의 빨간 펜은 파괴가 아니라 조각이었다. 대리석을 깎아내야 다비드가 나온다.

엔지니어도 마찬가지다. 굽타는 말한다. "AI는 버튼 열 개를 줄 것이다. 취향 있는 엔지니어는 아홉 개를 지운다." 이것이 '취향 있는 기술자'의 정의다. 더 많이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빼야 하는지 아는 사람.

취향은 감각이 아니라 판단이다

오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은 심미안이 아니다. 폰트를 잘 고르고, 색감을 잘 맞추는 것이 아니다.

굽타의 정의는 이렇다. 취향이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사용자의 신뢰를 만들며, 무엇이 보이지 않아야 하는지를 구분하는 내적 나침반이다.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이것을 '암묵지(tacit knowledge)'라고 불렀다. 설명할 수 없지만 작동하는 앎. 베테랑 기자가 기사 첫 문장을 읽고 "이건 되네" "이건 아닌데"를 직감하는 것. 노련한 편집자가 원고를 펼치자마자 구조의 허점을 짚어내는 것. 명장 요리사가 레시피 없이 간을 맞추는 것.

이 능력은 경험과 노출로 쌓인다. 많이 읽고, 많이 보고, 많이 써봐야 생긴다. 그리고 핵심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훈련이다. "그냥 다 좋아"는 취향이 아니다. "이건 왜 되고 저건 왜 안 되는가"를 설명할 수 있을 때 취향이 된다.

콘텐츠 감각 없는 엔지니어링의 위험

나는 일하면서 이 문제를 자주 목격한다. 대기업의 디지털 프로젝트들이 그렇다. 기능은 많다. UI는 깔끔하다. 그런데 아무도 안 쓴다. 왜일까.

사용자가 그 서비스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구현 가능한 것들의 목록을 다 넣었다.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가려내지 않았다. 이건 기술력의 문제가 아니라 편집력의 문제다.

콘텐츠 감각이란 단순히 글을 잘 쓰는 능력이 아니다. 이 정보가 사용자에게 어떻게 읽히는가, 이 흐름이 신뢰를 만드는가 파괴하는가, 이 디테일이 왜 여기 있어야 하는가를 감지하는 능력이다. 그것이 없으면 기술적으로 완벽한 제품이 공허해진다.

굽타는 투자자 관점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창업자를 평가할 때 가장 주목하는 것은 창업자가 포기한 것에 대해 어떻게 말하는가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는가. 그것이 취향의 증거다.

그래서 나는 무엇을 기르고 있는가

기자 시절 취재 노트를 들여다보면 지금도 낯이 뜨겁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뒤섞여 있다. 판단 기준이 흐렸다. 많이 쓰면 좋은 기사라고 착각했던 시절이 있다.

지금은 다르다. 보도자료 한 장이나 기획안 한 페이지를 쓸 때,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빼는 작업이다. 무엇을 말하지 않을 것인가. 어떤 수치를 넣지 않을 것인가. 어떤 표현이 신뢰를 깎는가.

AI를 쓰면서 이 감각이 더 중요해졌다. AI는 요청한 것 이상을 준다. 그래서 더 많이 잘라낼 줄 알아야 한다. 편집자의 눈을 유지하지 않으면, AI가 만들어준 완성도 있어 보이는 결과물에 그대로 서명하게 된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더 빠른 실행이 아니다. 무엇을 만들고 무엇을 버릴지 아는 것이다. 취향은 타고나는 게 아니다. 좋은 것을 많이 보고, 나쁜 것에 이유를 묻고, 과감하게 지우는 연습에서 온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지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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