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고삐 풀린 자본주의
고삐 풀린 자본주의, 1980년 이후 앤드류 글린 | 김수행외 옮김 필맥 2008.05.01 . 1. 경제학이 설명...
[서평] 고삐 풀린 자본주의
2009. 8. 2. 19: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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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드류 글린 | 김수행외 옮김
필맥 200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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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것들.**
사회과학을 하면서 늘 느끼는 생각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까? 재미있게도 내가 경제학을 배우며 느꼈던 것은 어떻게 경제학자들은 우리의 삶을 이다지도 간단한 그래프와 함수로 표현해 낼 수 있을까 라는 경외감이었다.
하지만, 경제가 모든 것에 기반이라고 생각했던 막스조차도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가장 큰 변수라고 이야기했다시피 수많은 가정과 단순화는 경제학이 우리 삶의 한 단면 밖에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한다. 비유하자면 X-선 촬영 같이 우리 몸의 근간을 이루는 골격은 잡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코 인간의 삶 전체를 설명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케인지안이나 통화주의자들이 얼마나 정교하게 그래프를 그리고 그 변화를 예측했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그래프 이동이 내 이웃에게 가져온 삶의 변화나, 내가 살고 있는 국가의 변화, 그리고 전세계 내가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국가에 가져온 변화를 예상이나 했을까?
학문이 삶과 유리되지 않았고, 그들의 이론이 양날의 칼로 기능할 수 있다면 이들은 보다 신중해야 할 것이다. 책에서 다룬 1980년대 이후 자본주의의 모습은, 말 그대로 인간에게서 벗어난 통제력 밖으로 향하는 자본주의다.
2. 신자유주의? 그건 대세라구?
대학에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들은 구호 중 하나는 반미와 신자유주의 반대이다. 물론 이라크파병과 같은 사건들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기에 반미의 기치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논리적으로 내 이성을 설득하지 못하였다. 세계화=신자유주의=빈부격차=부정의 라는 공식은 그 과정을 분명하게 설명해 주지 못했고, 한국의 재벌과 같은 구조들은 신자유주의라는 단어의 부정적 뉘앙스와는 별개로 신자유주의적 처방들(금융자유화와 노동유연화 및 규제완화)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IMF에서 한국에 요구했던 1997년 일련의 조치들은 어쨌든 한국을 수렁에서 건져내는 듯이 보였고, 전세계적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우리만 도태될 수 없지 않냐는 자조적인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 수많은 규제 완화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신자유주의가 가진 모순들은 사회에서 터져 나왔다. 못살겠다는 목소리는 신문지를 채워나갔고, 반대로 부동산 졸부들이 등장했다. 미시적 차원 뿐 아니라 거시적인 문제들도 불쑥 불쑥 우리를 긴장시켰다. 외환위기 때 핫머니에 놀란 가슴은 외국인 투자세력에 대한 불신의 눈초리를 지속시켰고, 뜻하지 않은 환율의 급등은 한국의 경제에 심심치 않게 적신호를 보냈다.
점점 커져가는 시장의 힘은 노동을 압도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까지 이어지던 노동의 희생을 고려한다면 부당한 것이었다. 1990년 이후 조금씩 나아지던 노동에 대한 대우는 1997년 이후 다시금 악화되었고, 노동자들은 경제성장과 인플레이션의 통제라는 명분 속에서 1990년대 달성했던 실업급여, 최저임금, 고용보호 수준의 퇴보를 경험해야 했다. 이는 구미권이 1980년대 신자유주의화 속에서 겪은 것과 대동소이한 것이었다.
노동시장의 규제완화는 노동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찬미되었으며 IMF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자자본에 우쭐했고 편익과 비용을 고려해 보지도 않고 노동시장의 규제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결국 결과는 실업자들과 일자리 불안정뿐이지 않은가. 시장의 우위가 곧 인간의 물화와 소외를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장 우위는 가진 자들에게만 관대했고 80%의 사람들은 더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
실제로 신자유주의적 물결 중 하나인 민영화로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사람은 매매차익을 노리는, 그 민영화된 기업과는 전혀 무관한 자본일 뿐이다. 반면 가장 큰 손해를 본 사람들은 민영화의 결과로 일자리를 잃게 되는 사람들이 아닌가. OECD 가 언급하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느 정도의 혼란과 실직이 수반된다는 말은 무엇인가. 케인즈의 말처럼 우리는 장기적으로 모두 죽고 마는 것이 아닌가.
* 그렇다면 왜 신자유주의는 노동의 유연화를 주장하는가?
기본적으로 그들의 주장은 임금의 경직성이 실업률을 높이고 산업효율성을 저해시켜 전체적인 발전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캐나아와 프랑스의 사례에서 보듯이 임금의 경직성이 저숙련 노동자의 실업을 증가시켰다는 가설은 타당하지 않다. 물론 이론에서 고려하지 못한 변수들이 개입되었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노동 유연화는 경영에 유리한 정책일 뿐이다.
그렇다면 실업급여의 삭감, 최저임금의 인하, 고용보호의 약화가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사회적 보장망은 있는 대로 찢어 놓고 OECD, IMF, EU는 무엇을 박수친 것인가? 경제학의 이론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이들은 정년 몰랐던 것일까?
의학계에서도 인간에 대한 임상실험은 금지대상이다. 그럼에도 왜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현실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실험하려고 드는 것일까. 우리들은, 노동자들은 실험용 쥐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3. 국제정치 속에서 희생된 정의.
물론,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 이후 복지국가로의 제3의 물결의 역기능에 대한 대안으로서 출발했다. 침체된 경제에 대해 보다 시장중심적인 정책을 내어 놓으며 보이지 않는 손이 달성할 수 있는 최상의 효율성을 도모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 속에는 사실 보이지 않는 여러 정치적 변수들이 개입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국제 통화 시스템의 변화를 언급해 보자. 1973년 이후 고정환율제에서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은 사실 트리핀의 딜레마에서 알 수 있듯이 예견된 문제였다. 멀리 올라가자면 전후 통화체제의 성립에서 미국이 자국의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으면서 세계통화시스템의 전환은 예정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적 질서를 배제한 채 그리고, 1973년의 상황에서 급작스러운 변동환율제로의 전환은 결국 미국의 경제 패권 유지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보다 적극적인 미국내 금융자본과 자산은 통화유연화를 통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1973년 이후 외국인 집적투다(FDI)의 비율은 급상승했고, 그러한 추세와 맞물려 세계는 실물보다 더 큰 금융의 세계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예상하기 힘든 환율변동과 그에 따른 금융위기의 빈발을 초래했다. 고작 몇 십원의 환율 변화가 실제 현실에서는 수십만의 빈민을 양산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국 변동환율제와 그로 인해 촉발된 금융자유화의 물결이 얼마나 비인간적인지를 말할 수 있다. 정치와 연동된 경제 그리고 그 정치에 욕심에 의해서 희생된 이들이 얼마나 부지기수인가. 세계은행 발표에 따르면 1997년 이후 아시아 금융위기로 아시아 지역의 빈민이 2200만 명 증가했다고 한다. 세계 경제의 동력이라는 미국 또한 유연한 금융시스템 속에 급격한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은 결과를 더욱 비관적으로 보여준다.
4. 우리가 마주한 성적표
우리는 1980년 이후 몇 번의 부침을 겪었다. 혹자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렸다고도 하고 혹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역동적인 국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90년대 말 아시아 외환 위기 이후 지금 우리는 또다시 전세계적 금융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97년 이후 우리가 택한 신자유주의적 처방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우리는 두눈을 뜨고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고 판단된다면 과감하게 정책적 전환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20년 이상 일찍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고 내재화된 국가들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듯이 보인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선진국의 역동성도 회복시키지 못했고, 후발국들의 경제상황을 외부상황에 취약하게 만들었으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저하시켰다. 신자유주의가 목표로 삼았던 최대효율의 달성은 결코 시장이상주의에서처럼 작동하지 않았고 우리는 보다 취약하고 민감한 세계 속에 살게 되었다. 세계 경제의 3축이라고 불리던 미국과 일본, 유럽은 여전히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의 물결을 타고 있지만 저성장과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세계는 보다 평평해지기 보다는 보다 가팔라지는 듯이 보인다. 예상하지 못한 구덩이 들이 곳곳에 자리하고 있고, 누구도 경쟁속에서 구덩이에 빠진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 IMF는 구덩이에서 꺼내주는 대신 더욱 가파른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가파른 달리기는 어디에서 끝날 것인가? 가파른 길의 끝에는 절벽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여러 국가들은 더욱 불평등한소득분배, 복지국가의 최소화, 긴 노동시간과 같은 미국식 모델을 경쟁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정답일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로의 역사로의 종말을 논할 시점에 우리는 와 있는가?
5.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우리는 더 행복할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다 차분하게 우리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장률 1%는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의미이다. 하지만 그 1%에 희생되는 우리의 삶은 퍼센테이지로 환산하기 힘든 것들이다. 처음에 내가 경제학이라는 학문자체에 대한 회의를 던졌던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수치나 통계 속에서 많은 부분들을 놓치고 있다. 환경, 가족, 이웃, 사랑, 희망, 일 과 같은 것들은 우리의 행복을 본질적으로 구성하는 것들이다. 지금의 금융위기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한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조금씩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말하고, 대안적인 패러다임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바란다. 우리가 서로 경쟁을 통해서 발전하기보다는, 우리가 협력을 통해서 발전할 수 있기를. 시장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이 되는 경제를 배울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