엣지가 나한테 편지를 보냈다
공혈견 엣지 기사를 1인칭 탐지견 시점으로 썼다. 독자들이 울었고, 편지가 왔고, 현금도 왔다. 기자 생활에서 기사가 세상을 바꾼다는 걸 처음 실감한 순간이었다.
모교인 서울대를 취재하러 갔다가 엣지를 만났다.
수의대 동물병원 한쪽 케이지에 늙은 래브라도 한 마리가 있었다. 11살. 사람 나이로 65살. 마약 탐지견으로 6년, 공혈견(헌혈견)으로 4년을 일했다. 입 주변 털이 하얗게 세어 있었다. 담당 수의사가 "이번 달까지 입양 못 가면 안락사 예정"이라고 했다.
잠깐 멈췄다.
나라를 위해, 다른 개들을 위해 평생을 보낸 개가 주인을 못 찾으면 안락사를 맞아야 한다는 게. 그 이야기가 직진으로 꽂혔다.
기사를 어떻게 쓸지 고민했다.
공혈견 제도를 설명하는 기사는 쓸 수 있었다. 수치도 있고, 전문가 코멘트도 있고. 근데 그렇게 쓰면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았다. 제도 기사는 독자를 움직이지 못한다. 뭔가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1인칭 엣지 시점으로 써보기로 했다. 엣지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형식. 인천공항 탐지견 훈련소에서 처음 훈련받던 기억, 마약 8건을 적발하던 전성기, 동물병원 케이지에서 보낸 4년. 마지막에는 추신을 달았다.
"혹시 나를 찾는 주인이 없으면 안락사를 맞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기사가 나간 날, 서울대 동물병원 전화가 터졌다.
입양 신청이 100건을 넘어섰다. 초등학생이 5만원을 현금으로 넣은 편지를 보냈다. "엣지에게 필요한 걸 사주라"고 했다. 전직 국회의원도 신청했다. 미국 뉴욕총영사관 외교관이 메일을 보냈다. 캘리포니아 동물보호단체도 연락을 해왔다.
엣지는 충북의 손씨 가족에게 입양됐다. 아파트에 살던 가족이 엣지 때문에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10일 뒤 만난 엣지는 넓은 마당에서 어린 동생들과 뛰어놀고 있었다.
기사를 쓰고 이런 반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SBS 동물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엣지 이야기를 방영하겠다고. 나중에는 '헌혈견 엣지'라는 동화책이 출판됐다. 출판사에서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이 왔고, 기꺼이 썼다.
현대자동차가 2019년 반려견 헌혈카 전국 캠페인을 시작했다. 1억5000만원짜리 개조 헌혈차를 만들고, 헌혈견을 '도그너(DOgNOR)'라 부르며 스카프와 조끼를 줬다. 2012년에 신청자 한 명 없어서 안락사 위기였던 공혈견 제도가, 7년 뒤에는 대기업 사회공헌 사업이 됐다.
기사 한 편의 인과를 직접 확인하는 경험이 이렇게 오래 걸리기도 한다.
지금도 엣지 기사를 떠올릴 때 생각하는 게 있다.
같은 사실을 전달하더라도 누구의 목소리로 전달하느냐가 완전히 다른 기사를 만든다. 공혈견 제도 기사는 수십 번도 더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엣지가 직접 말하는 기사는 한 번밖에 없었다.
독자를 움직이는 건 데이터나 전문가 코멘트가 아니라, 눈앞에 있는 한 존재의 이야기라는 걸 엣지가 가르쳐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