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같지 않은 기자
개기자, 디기자, 피기자, 데기자. 동료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기자답지 않다는 말을 자꾸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게 나쁘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동료들이 내게 붙인 별명이 여러 개다.
개기자(개발자+기자), 디기자(디자이너+기자), 피기자(PD+기자), 데기자(데이터분석+기자).
기자답지 않다는 말을 자꾸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나쁘지 않게 들리기 시작했다.
10년 넘게 기자를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기대하는 게 있다. 취재력, 단독, 인맥, 마감 체력. 한때는 나도 그랬다. 사회부에서 경찰서 출입할 때는 새벽에 전화기 붙들고 단독 타이밍 재는 게 전부인 것처럼 살았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근데 나는 그 와중에도 딴 생각을 했다.
2011년에 트위터에 '언더라이너(Underliner)'라는 계정을 만들었다. 책에서 밑줄 긋고 싶은 문장만 올리는 계정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몇 년 뒤에 '책끝을 접다' 같은 서비스가 나왔다. 나는 이미 거기 있었던 셈인데, 그때는 그게 아이디어인 줄도 몰랐다.
2017년에는 페이스북에 '비트코인뉴스' 페이지를 만들었다. 비트코인이 막 알려지기 시작하던 때였다. 페이지는 잘 됐다. 주변에서 "야, 그거 너 했어?" 하는 말을 꽤 들었다.
사내에서 R스터디도 만들었다. 데이터 분석을 같이 공부하자는 모임이었는데, 기자들이 R을 왜 배우냐는 시선도 있었다. 그게 뭔 상관이야 싶었다.
편집인을 찾아가 기획서를 들이미는 기자는 흔하지 않다.
나는 가끔 그랬다. "이런 서비스 해보면 어떨까요" 하고. 그렇게 해서 참여한 게 팩플이었고, 뉴스랩이었다.
팩플을 만들 때 나는 기사만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뉴스레터 포맷을 기획하고, 홈페이지 시안을 직접 짜고, 구독자 데이터를 보면서 어떤 콘텐츠가 오픈율을 올리는지 분석했다. 스토리폴이라는 설문+콘텐츠 통합 포맷을 제안해서 실제로 운영했다. 독자들이 반응했다. 반응형 레이싱 차트로 IT 기업 성장 히스토리를 만들기도 했고, 클럽하우스가 뜨기 시작할 때는 창작자 이코노미를 주제로 방을 개설해서 독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또 뭔가 하려고." 동료들이 자주 하던 말이다. 맞다.
초창기 퍼블리를 찾아가서 '대선사용설명서'를 같이 만들자고 제안했다. 3040을 위한 경제매체 bespoke, 알고리즘 편식을 막는 개인화 서비스 Know/edge 같은 사이드 프로젝트 기획서는 지금도 어딘가 파일 속에 남아 있다. 실제로 만들어진 건 없지만, 그 생각들이 쌓여서 결국 팩플 같은 게 됐다고 생각한다.
되돌아보면 일관된 게 하나 있다.
커뮤니티.
언더라이너도 혼자 책 읽다가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는 게 아쉬워서 만든 거였다. 그게 트위터에서 팔로워 1000명이 넘는 모임이 됐다. 구글닥스에 좋은 문장들을 같이 모아서 공유하고, 투표도 하고, 오프라인 모임까지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진지한 커뮤니티였는데, 당시엔 그냥 재미있어서 했다.
비트코인 페이지도 비슷했다. 초창기엔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나중엔 실제로 사고파는 사람들까지 생겼다. 페이지 안에서 거래 정보가 오갔다. 지금 기준으론 별거 아닐 수 있지만, 2017년엔 비트코인을 아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다.
2018년에 데이터저널리즘 팀에서 독자 초청 모임을 연 것도 마찬가지다. 기사 내보내고 끝나는 게 싫었다. 독자 반응을 직접 듣고 싶었다.
콘텐츠를 일방적으로 내보내는 일에 한계를 느꼈던 것 같다. 나 혼자 취재하고 나 혼자 기사 써서 포털에 올리고. 잘 됐는지 안 됐는지 숫자로만 보고. 그 숫자 뒤에 사람이 있는데.
조금 다른 이야기도 있다.
망원동에 주택을 빌려서 개조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한 적이 있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이랑 나눈 이야기를 '망사스타킹'이라는 칼럼으로 썼다. 유튜브로 독립서점 사장님, 목공 스튜디오 사장님 인터뷰를 만들었고, 목공에 빠져서 "기자 그만두면 가구 디자이너 할 거야"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계속 있었다. 기사를 쓰는 것보다 그 기사가 누군가의 생활에 닿는 것에 더 관심이 있었다고 하면 정확할 것 같다. 콘텐츠와 삶이 연결된 어딘가. 그게 언론사 안에서는 끝내 찾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기자다운 기자를 물어보면 정해진 이미지가 있다.
나는 그 이미지를 자꾸 벗어났다. 그게 기자 같지 않다는 말을 들은 이유이기도 하고, 결국 다른 곳으로 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 기자 같지 않은 기자였던 게 그냥 나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