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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의 종말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소규모 매거진 전성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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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했다.

'물성'있는 것에 대한 향수가 인공호흡기 역할을 하며 종이책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있지만, 사망선고까지 기한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아주 소수의, 일종의 스노비즘을 사랑하는 이들의 취향 혹은 자기 과시의 수단으로 종이책은 남을 것이라 믿었다.

2021년 기준 연간 1인당 독서량은 4.5권으로, 2019년 7.5권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1년에 1권 이상 책을 읽는 사람의 비율은 47.5%(2020년기준)에 불과하다.

사진: UnsplashBenjamin Dada

지식의 폭발을 낳았던 종이와 인쇄술의 발명처럼, 인터넷과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양피지가 발명된 후 그렇게 되는 건 거스르지 못하는 순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틀렸다. 아니 절반만 맞았다.


전자책의 실패와 트레바리의 성공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고, 일부는 전자책 사업에 뛰어 들었다. 킨들을 만든 아마존이 대표주자였고 우리나라에는 교보문고, 혹은 리디 같은 회사가 있었다.

결과는 모두가 잘 아는 바다. 지금 누구도 전자책을 들고 다니지 않는다.

누군가는 아이패드라는 대체재를 언급할지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누가 영상도 보고 게임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필기도 하는 태블릿PC를 따분하게 책읽는데 쓸까.

사진: UnsplashAlessia C_Jpg

과거 지식의 폭발이 책에 대한 관심을 낳았고, 새로운 소식과 정보에 대한 열망이 신문의 전성시대를 만들었다. 영상의 시대가 오고 TV가 그 자리를 일부 차지하며 책에 대한 관심은 줄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결정타를 날렸다.

제한된 사용자의 관심은 사진, 영상,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으로 분화됐고 책이 설 자리는 줄었다.

서점에 간다는 것은 '구매'의 행위라기 보단 탐색이나 문화적 취향을 드러내는 행위에 가깝게 변질됐다.

중고책 서점 Photo by annotator

이렇게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희소해지면서 이를 타겟하는 버티컬한 시장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독서와 커뮤니티를 합친 '트레바리' 같은 서비스다. 오프라인 모임과 결합된 이 서비스는 독서를 통한 지식 획득에 더해 토론, 의견교환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까지 노린 서비스다.

트레바리 서비스

2015년 처음 시작된 이 서비스는 '책좀 읽는다'는 젊은 층 사이에서 꽤 인기를 끌며 40억원대 투자에 누적회원수 5만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강남에 11층 짜리 빌딩 전체를 빌려 아지트로 만들고 400여개의 클럽이란 소모임을 만들 정도. 네이버 대표부터 법률가, 소설가, 배우, 공무원 등 다양한 클럽장으로도 유명했다. 코로나 이후 예전 같은 파워풀한 경쟁력은 보이지 못하고 있지만, 한때 트레바리류의 지식 공동체, 지식 모임,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우후죽순 생겨날 정도로 트렌디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기에 향후 방향성이 궁금한 서비스다.

종이, 책으로 돌아와서 말하자면 책 자체에 대한 매력보다 이를 매개로 한 사람, 커뮤니티, 팬 같은 요소가 중요해졌단 의미다. 책이 더 심오한 지식을 주고, 정돈된 지식으로 울림을 준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유튜브 영상 10분이나 뉴스레터 한 통, 팟캐스트 한 편이 더 큰 지식을 주기도 한다. 책이나 기사 등을 정점으로 서열화 할 수 있던 지식정보가 '콘텐츠'라는 이름으로 권력이 해체 된 거다. 그리고 콘텐츠라는 범주 안에는 사람, 커뮤니티 등으로 발생하는 다양한 맥락까지 포함된다.


종이 잡지의 쇠퇴. 작아진 몸집과 다양해진 주제

흥미로운 점은 매거진 혹은 잡지라 부르는 종이 매체의 행보다. 잡지는 책을 많이 보던 시절엔 훌륭한 멀티미디어 매체였다. 1970년에 창간했던 여성중앙은 한때 월 10만부까지 찍었다고 하니 엄청 잘나가던 잡지다. 샘터, 행복이 가득한집, 여성 동아 같은 잡지는 미용실, 병원, 은행, 관공서, 어느 카페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매체였고 브랜드 입장에선 엄청난 광고판이었다.

신문이나 책보다 화려한 이미지와 비주얼이 담긴 잡지는 어쩌면 시대의 흐름을 더 빨리 읽고 있었던 것인지 모른다. TV와 책 사이 어딘가에서 더 세련되고 감각적으로 우리의 시간을 가져가는 매체였으니까. 하지만 이 역시 더 자극적이고 더 세련된 인터넷의 등장으로 자리를 잃게 된다. 우리나라 잡지산업 종사자수 통계를 보니 2012년 1만 8729명에서 2017년 1만 2154명, 2021년 6926명까지 줄어들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종사자는 줄고 있는데 잡지 사업체는 증가했단 점이다. 2019년 1777개이던 잡지사업체는 2021년 1788개로 오히려 소폭 증가했다. 종사자수가 2000명이 넘게 줄었는데 사업체 수가 늘어났다는 말은 소규모 잡지가 늘었다는 의미다. 실제로 2021년 기준 잡지업체 1개사 평균 종사자수는 3.9명으로 2012년 12명에 비해 규모가 1/3로 줄었다.

이는 여성중앙처럼 덩치 큰 잡지가 아니라 소규모 잡지가 증가했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잡지시장을 보면 화려한 광고를 덕지덕지 붙인 잡지의 설자리가 사라졌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의 말을 빌리면

광고를 디딤돌 삼아 에디터와 디자이너 수십명이 달라붙어 한 호를 만드는 ‘그랜드 매거진’ 시대는 완연히 저물었다

대신 콘텐츠에 집중하여 책으로의 가치를 강조한 독립잡지가 늘었다. 당장 내가 좋아하는 잡지만 해도 브랜드를 소개하는 매거진B, 도시문화 스토리를 다루는 어반라이프, 어라운드, 매거진브리크 같은 잡지가 있고 철학잡지 뉴필로소퍼 등 다양한 매거진이 등장했고 독자에게 사랑받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정기간행물등록현황’에 따르면, 2016년 4931종까지 감소했던 잡지 종수는 2021년 5495종까지 다시 늘었다. **‘고품질 독립잡지’(High Quality Independent Magazine)**의 시대가 온거다. 고품질 독립잡지의 증가는 인터넷 시대 검증된 지식과 정보를 찾는활동을 자신과 비슷한 취향의 사람이 대신하여 알려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기인한다. 일종의 검증된 큐레이팅 콘텐츠를 원하는 마음이 발현된 결과다.

매거진 창작자가 되고자 하는 니즈도 있다. 블로그, 카카오 브런치 등 글을 쓰는 대중이 늘었고 사진, 영상 등 재능을 갖춘 이들도 많다. 이들은 뉴스레터를 통해 독자와 소통하는 것에 익숙하고 창작의 가치를 안다. 이들은 매거진이라는 형태를 통해 진짜 독자한테 실제로 콘텐츠가 읽히기를 바란다.

이들 매거진은 주류잡지와 차별화되는 독립적 시선에 가치를 둔 잡지로 광고주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판매를 통해 잡지를 꾸려나가고, 콘텐츠의 가치를 지불하는 독자를 원한다. 취지에 공감한 독자들도 지갑을 기꺼이 여는 편이다. 정기구독도 있고, 꽤 늘어난 독립 서점을 통해 팔매되는 경우도 많다. 얼마전 종이잡지클럽 종이로 된 잡지를 읽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 '종이잡지클럽'을 운영하는 김민성 대표를 만날 일이 있었는데, 매거진이야 말로 다양한 취향의 사람을 연결하고 감도높은 취향의 공유를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라고 말하더라.

https://www.wereadmagazi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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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시대, 매거진은 어떤길을 걸을까

포틀랜드의 powell's 서점. 이때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몇년 전 미국 여행 때 포틀랜드를 들린 적이 있다. 잡지 킨포크의 발생지이자 힙스터의 성지라 불리는 도시다. 내가 찾은 포틀랜드는 그렇게 힙한지는 모르겠지만, 차분하고 흥미로운 도시였다. 생각이 유연하고 과하지 않은 취향을 자연스럽게 내보이는 모습이랄까.

지금의 매거진 시장도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다. 소규모로 만드는 경우가 많아 소수의 사람이 흥미를 보이는 분야를 깊게 파고든다. 뭐가 대중적일까, 뭐가 인기가 있을까라는 질문보다는 관심과 취향이 분명한 독자를 보고 콘텐츠의 내용과 깊이를 정하는 거다.

이런 매거진은 기존의 잡지보다 책에 가까우며, 소유욕을 자극하는 경우가 많다. 롤모델도 분명하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에서도 콘텐츠의 힘을 기반으로 확실한 취향을 가진 독자를 타겟으로 하는 잡지가 벌써 10년전부터 인기를 끌어왔다.

이들 잡지는 종이 잡지의 위기 속에서도 매년 7%씩 판매량이 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7년 창간된 비지니스 라이프스타일잡지 '모노클'이다. 모노클은 일종의 브랜드로 성장했고 다양한 기업과 협업하며 매거진의 새로운 롤모델이 되었다.

사진: UnsplashIgor Son

국내에서도 여러 잡지들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하고 싶은 포인트는 스타트업들이다. 최근엔 스타트업들도 매거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배달의민족의 <매거진 F>, 직방의 <디렉토리> 처럼 스타트업이 뾰족한 매거진을 만들어 내고, 오늘의집 같은 곳에서도 라이프스타일을 주제로 한정판 매거진을 찍어낸다. 이는 팬층에게 물성을 기반으로 굿즈처럼 기능하며 커뮤니티성을 만들기도 하고, 브랜드의 힙함을 보여주는 소재로 사용되기도 한다.

직방이 만든 디렉터리 매거진

앞으로 매거진은 더 진화할 것이라 생각한다. 종이책의 종말이라는 명제에 반기를 드는 선봉의 자리에 매거진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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